생각의 여름

생각의 여름
생각의 여름
  1. 십이월
  2. 골목바람
  3. 활엽수
  4. 동병상련
  5. 서울하늘
  6. 허구
  7. 그래서
  8. 긴 비가 그치고
  9. 다섯 여름이 지나고 노래 듣기

다 덜어내고 남은 노래들

‘생각의 여름’을 장난 삼아 칭하는 문구는 포크의 근본주의자. 그의 지향에 있어 결벽에 가까운 부분을 놀리듯 부르는 것이다. 통기타와 목소리 이외의 요소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고집을 부르기도 하고 “같은 내용을 쓸데없이 반복하는 것은 죄악”이라며 2절을 쓰는 것을 극도로 기피하기도 한다. 그 결과 노래의 길이가 대부분 2분 초반 대에 그치고 마니, 근본주의자라는 얘기가 흰 소리만은 아니다.

상황이 이러하니 이걸 팔아먹으려는 소속사의 입장에서는 난처해질 수밖에 없다. “□□의 계보를 잇는 통기타 솔로 싱어송라이터!”라고 선전할 수 있다면 좋겠는데, 그런 식으로 사게 만들면 사기라고 불만만 잔뜩 살 것이다. 딱 떨어지지가 않는다. 그의 작업은 정제된 언어로 인해 시를 연상시키지만 그걸 선율과 떼놓고 생각하긴 힘드니 이건 분명 노래라 해야 한다. 어떤 의미들에서 출발하긴 하는데 소리 자체의 질감에도 상당한 관심을 갖고 있다. 한 축의 양 끝에 ‘시’와 ‘노래’를 놓고 그와 직각으로 만나는 다른 축의 양 끝에 ‘의미’와 ‘소리’를 놓은 사분면 위의 종잡을 수 없는 어딘가를 지향하는 것처럼 보인다.

바라는 게 이렇다니 한 마디로 재단하는 건 포기하는 수밖에. 노래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라는 멜로디와 가사를 따져본다. 타협적이지는 않지만 마냥 불편하지 않고 달콤하지는 않더라도 밋밋하지 않은 그의 멜로디는 의외로 감각적이라 매력적이다. 무엇보다 말을 허비하지 않으려는 의지가 담겨 있는 그의 가사가 또렷한 발음을 통해 전해지면서 그 간결함은 듣는 이에게 집중을 강요하는 동시에 생각의 여백을 선사하는 의미 있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런 그가 몇 년에 걸쳐 작업해 온 노래들을 빼곡하게 채워 넣었으니 이 음반도 당연히 이런 특징을 그대로 담고 있다. 음반 작업에 들어가기 전부터 곡 순서부터 정해 놨던 것을 보면 그가 의미의 흐름을 얼마나 중시하고 있는 지 엿볼 수 있게 한다. 다른 편성은 두지 않고 오로지 기타와 목소리로 작업을 하여 역시 노래가 중심을 차지하고 있지만, 군데군데 배치된 소리의 질감 변화와 공간음 소리도 이 노래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임을 의미한다. 그리고 11 곡이 들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30분에 채 못 미치는 재생 시간을 보면 괜한 중복의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고 오롯한 노래를 들려주고자 하는 그의 의지를 느낄 수 있다.

그렇다고 표현의 의지가 부담스러울 정도로 흘러 넘치는 그런 음반인 것은 아니다. 부담스럽다면 이런 얘기 다 무시하고 음반을 들으면서 노래의 가사와 선율을 음미해도 무방하다. 이렇게 듣기에도 나쁜 음반은 아니다. 이런 의미에서 『동병상련』-『서울하늘』-『허구』-『그래서』-『말』로 이어지는 대목은 이 음반의 백미라 할 수 있다.

팔리는 노래 잘 만들기로 평판이 자자한 ‘브로콜리 너마저’의 송라이터 덕원이 프로듀서로 참여하여 듣기 좋은 느낌을 살리는데 적잖은 기여를 했다. 그리고 기타와 목소리라는 최소한의 편성을 가지고 꽉 찬 소리를 만들기 위해 ‘아마도 이자람 밴드’와 ‘아침’의 음반에 참여한 바 있는 흰설이 엔지니어로 애를 써 준 것도 빼놓을 수는 없다.

이렇게 음반이 나온다고 하더라도 이미 본업을 가지고 있는 박종현이 그걸 접고 음악에 뛰어드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생업을 갖고 있는 이들에게 음악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준다는 붕가붕가레코드의 모토 ‘지속가능한 딴따라질’을 대변하는 인물이랄까. 그래도 벌인 일은 책임을 져서 회사 돈은 까먹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이전까지는 한 달에 한 번 공연을 했는데 활동 빈도를 200%로 늘려 앞으로는 두 번씩 한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긴 하다. 이에 9월부터 『가을, 생각의 여름』이라는 이름으로 매달 한 번씩 자신의 이름을 걸고 공연을 하겠다는 계획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가뜩이나 대중성이 적은 음악에 홍보 활동도 제대로 할 수 없다니, 장사하는 입장에서는 역시 한숨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런 연유로 ‘생각의 여름’의 음반 작업에는 붕가붕가레코드 사상 최저의 제작비를 투자했다.

생각의 여름

생각의 여름
"깊어가는 여름의 생각, 생각의 노래"

Albums

Members

  • 박종현

    박종현

History

2009년 정규 1집《생각의 여름》 발매 (붕가붕가레코드)
2012년 정규 2집《곶》 발매 (붕가붕가레코드)
2016년 정규 3집《다시 숲 속으로》 발매 (붕가붕가레코드)

Profile

생각의 여름   ‘생각의 여름’은 싱어송라이터 박종현의 1인 프로젝트이다. 2005년 ‘치기 프로젝트’로 데뷔한 후 2009년 정규 1집을 내면서 생각의 봄인 ‘사춘기(思春期)’의 다음 시기를 의미하는 생각의 여름이라는 이름을 쓰기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통기타와 목소리를 중심으로 노래를 만들고 부른다는 점에서 일단 포크 음악이라 지칭할 수 있지만 본인은 그러한 장르 구분에는 크게 구애 받지 않고 있다.   ‘말을 짓고 노래를 만든다’는 특유의 작법에 걸맞게 치열하게 갈고 닦인 노랫말이 일단 특징이다. 이처럼 말을 우선에 놓다 보니 필요 없는 말의 중복을 원하지 않아 ‘1절-후렴-2절-후렴’의 반복이 특징인 전형적인 대중음악의 구성과는 다른 형태의 노래들을 많이 만든다. 그래서 노래의 길이가 짧은 경우가 많은데, 그래서 한 때는 ‘다 덜어낸 노래’라는 문구로 그의 음악을 수식하곤 했다.   그럼에도 노래의 선율을 매끈하게 뽑아내는 특유의 감각에 사람을 잡아 끄는 매력이 있는 타고난 목소리의 음색은 자칫 자폐적일 수 있는 음악에 대중적인 면을 부여한다. 2009년 1집 [생각의 여름] 발매 당시 특별한 홍보 활동이 없었음에도 거의 입소문에 기대어 3000장이 넘는 CD 판매를 기록하며 생각의 여름을 애호하는 이들을 모아낸 것도 이러한 특징 덕분일 것이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드문드문 공연을 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활동이 없던 그는 1집 발매 후 3년이 지난 2012년에 2집 [곶]을 발매한다. 총 11곡이 수록되어 있음에도 17분에 불과한 전체 재생 시간에도 느껴지듯 앞서 말했던 간결함을 극도로 추구한 이 음반은 반드시 순서대로 듣도록 전곡을 하나로 묶어낸 파격적인 CD의 구성으로 찬반 양론을 끌어냈다. 디지털 음원 유통 역시 제한적으로 이뤄지는 바람에 제한적으로 노출됐던 이 음반을 마지막으로 생각의 여름은 그나마 있던 공연 활동도 중단한 채 긴 휴지기에 들어간다.   그렇게 다시 3년이 흘러 이제 그의 새로운 음악을 듣기는 아무래도 어렵겠구나 싶었던 2016년, 돌연 생각의 여름은 3집 [다시 숲 속으로]로 돌아왔다. 외국에 있던 그가 잠시 한국에 들어 온 사이 과연 시간 내에 가능할까 싶었던 작업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6월 말, 여름의 한복판에 그의 새 음반을 만나게 되었다.   음반 전체가 하나의 구성을 이루는 서사적인 서정과 잘 닦인 단어들과 문장들이 여전하다면 여러 세션 연주자의 참여로 다채로워진 음악적 구성과 함께 덜어내야 한다는 강박 자체를 덜어낸 듯한 풍성한 구성은 박종현이 그 동안의 시간을 보내며 만들어낸 나름의 성숙을 보여주는 것일 테다. 아마 예전을 보아 하건대 이번 음반 이후로 언제 다시 그를 만날 수 있을 지 기약은 없지만, 확실한 것은 생각의 여름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노래들이 나오고 있고 그게 쉽게 끝나지는 않을 것이며 그렇게 기다리는 시간만큼 그에 걸맞은 결과물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