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매D-6] 두번째 해외음반의 주인공, 토쿠마루 슈고와의 인터뷰

붕가붕가레코드
인터뷰에 앞서 상당히 긴장해 있었다. 일단 회사 대표 입장에서 새로운 클라이언트를 처음 만나는 자리였고, 일본인, 외국인이었다. 외국인 울렁증. 이쪽에서 사업뿐만 아니라 일본 건너가서 이뤄질 우리 회사의 이런 저런 일에 큰 계기가 될 수 있을만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상대방에 관해 들려오는 얘기들이 굉장했다는 게 문제였다. ‘일본이 낳은 젊은 천재’라던가 ‘미국에서 데뷔하여 글로벌하게 활동하는 뮤지션들’이라던가. 낯간지럽다 싶은 미디어의 호들갑이라고 생각하기에는 실제의 음악이나 이력이나 딱히 틀린 말도 아닌 것이다. 대중 음악의 변방에서 고만고만하게 음악 사업에 종사해 온 나 같은 사람에게 '국제적인 천재 아티스트를 알현'하는 것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래도 저쪽에서 특별히 부탁해 온 인터뷰, 거절할 수는 없다. 토쿠마루 슈고 역시 2박 3일이라는 바쁜 내한 일정 중에 그것도 공연 하는 날에 특별히 시간을 내 준 것이다. 그래서 만났고,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8월 18일로 예정된 그의 네 번째 음반 ‘Port Entropy'의 발매에 맞춰 그와 나눴던 대화의 내용을 풀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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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2010년 7월 9일(금) 13시
장소: 홍대 인근 카페 HIBI
진행: 곰사장
통역: 권선욱
정리: 강소희
사진: 곽원석


[Port Entropy] 수록곡, 'Rum Hee' (from P-Vine Records)




네오 시부야계도 뭣도 아닌 그저 토쿠마루 슈고의 음악일 뿐

한국에 온 것은 처음으로 알고 있다. 어떤 곳이라 생각했나?
- 그렇다. 처음이다. 한국에 대해서는 친구들이 여행 갔다 얘기해준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밥이 맛있고 밤이 길다.”라는 얘기였다.

하룻밤을 지냈다. 실제로 어땠나?
- 정말로 밤에 노는 사람들이 많더라.

사실 한국의 밤은 술 없이는 얘기하기 힘들다. 그런데 얘기를 듣기로는 술을 전혀 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그 ‘긴 밤’에 뭘 하고 있었던 건지.
- 사람들 속에 섞여서 어울려 노는 것은 별로 즐기지 않는다. 그보다는 관찰하는 것을 좋아한다. 어젯밤도 사람들을 관찰하고 있었다. (웃음)

만났을 때 꼭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대체 왜 붕가붕가레코드와 일하기로 생각한 건가? 우리 회사의 음악을 이미 들어봤으니 알고 있겠지만 음악 스타일이 상당히 다르다. 더욱이 붕가붕가라는 말의 의미, 조금 야하다. 알고 있나?
- 알고 있다. 그래서 일본 쪽에는 한국에서 같이 일하게 된 회사 이름의 의미에 대해서는 얘기를 하고 있지 않다. (웃음) 하지만 그건 부차적인 문제고, 제일 중요한 건 소속 아티스트들이 재미있다는 점이다. 시디를 받아서 들어본 결과 모두 다 좋았다.

‘文化文化(문화문화)’ 레코드라 소개하면 어떨까? 일본어로 이게 대충 ‘분가분가’라는 식으로 발음되는 걸로 아는데. 문화를 사랑하는 이들이 모여 있는 레이블이라고 소개해 달라. (일동 폭소) 어쨌든, 재미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선택했다고 하기에는 잘 납득이 가지 않는다. 다른 레이블들도 있는데.
- (매니저의 추천으로) 붕가붕가레코드의 음악을 처음 듣고 더불어 한국의 인디 음악들을 들어봤다. 일본과 다르지 않은 음악들이 많았다. 그런데 붕가붕가레코드의 음악은 일본에는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뭐라 말할 수 없는 특징이 있었다.

이에 이번 라이선스에 적극적인 역할을 했던 토쿠마루 슈고의 매니저 야하타씨가 한 마디 덧붙였다:
"네오 시부야계의 예쁜 음악을 하는 뮤지션의 카테고리에 묶이는 게 싫다. 공연을 보면 알겠지만, 토쿠마루 슈고의 음악은 네오 시부야도 뭣도 아닌 그냥 ‘토쿠마루 슈고의 특이한 음악’일 뿐이다. 이런 점에서 붕가붕가 레코드가 우리들과 딱 맞는다고 생각했다."
고맙다. 인정받은 느낌이다. 사실 나 역시도 그렇게 생각한다. (웃음)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렇기 때문에 불안한 것도 있다. 그런 식으로 독특한 우리 음악이 일본에서 팔릴까? 팔린다고 말하면 좀 그런가. 어쨌든 토쿠마루 씨를 포함한 일본사람들에게 어떻게 들릴까가 궁금하다.

-음악적으로는 전혀 문제없을 것 같다. 다만 재미있음을 전달하는 것이 중요한데, 그런데 대한 노력과 연구가 필요하지 않을까. 이런 면에서는 잘 모르겠다. 일본 사람들은 한국에 인디가 있다는 것 자체를 모르고 있다. 재미있는 부분을 전해 한국의 인디씬을 알게 만들어야 할 것 같다. 개척이 안 된 분야이니 처음부터 만들어내는 작업이 중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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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음악을 어떻게 들어주든 사실 상관없다”

‘재미있음을 전달한다.’ 그 부분에서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다. 일본에 한정되지 않고 세계 각국에 걸쳐 활동하고 있다. 그런데 가사는 일본어로 쓰고 있고, 스타일의 측면도 영미의 그것과는 상당히 다르다. 그처럼 말이 안 통하는 상황에서 과연 어떻게 ‘재미를 전달’하는 것인가.
-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내가 한국음악이든 브라질 음악이든 듣고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지 않을까. 결국 음악에 의해서 울림이 일어나지 않을까. 내 음악에서 한국 사람들도 울림을 느끼지 않을까?

물론 개인적으로 울림이 있었다. 솔직히 과격한 음악을 주로 듣는 취향에 맞지는 않았지만, 반복해서 듣고 있으니 굉장한 매력을 느꼈다. 대충 두 가지 면에서 매력을 느꼈는데, 밝고 낙천이고 긍정적이라는 면, 그리고 집중을 요구한 다기 보다는 관조한다는 느낌이라는 점. 음악을 듣고 있을 때 개인적으로 힘든 상황이었는데 치유되는 느낌을 받았다. 음. 대체 뭘 물어보고 싶었던 거지. (웃음) 정리하자면, 청자가 어떤 감정을 느끼기를 바라는 것인가.
- 어려운 질문이다. (잠시 생각.) 솔직히 말하면, 사실 어떻게 들어주든 상관없다. 그 동안 많은 사람들이 많은 감상을 얘기해줬다. 당신처럼 치유를 받았다는 사람도 있었고, 음악적으로 분석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코드 진행이라던가 기술적인 측면을 따지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팝인데 특별한 팝으로 평가해주는 사람도 있고. 꼬마 애부터 할아버지까지 넓은 팬 층이 있는데, 다들 잘 들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자기 나름대로 들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내가 원하는 음악을 만들면 되고.

장기하랑 비슷한 얘기를 한다. ‘나는 내 음악을 할 테니 듣는 사람은 마음대로 들어라.’ 노래를 팔아야 하는 사장을 곤란하게 만드는 얘기. (웃음) 그래서 사실 빼놓을 수 없는 게 가사다. 솔직히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 (웃음) 그래도 낙천적이고 밝다는 인상이다. 이 부분도 우리 회사의 어둡고 현실밀착적인 정서와는 차이가 있는데, 궁금하다. 세상에 대한 시각이 낙천적인가?
- (당황하며) 음. 역시 어려운 질문인데... 어떻게 얘기해야 할 지... (잠시 생각)
내가 가사를 잘못 이해한 건지도 모르겠다. 그냥 다음 질문으로 넘어갈까?
- 우하하하. (폭소) 붕가붕가레코드 음악처럼 가사가 구체적인 것도 괜찮을 것 같긴 하다. 하지만 난 못하겠다. 가사를 쓰는 게 너무 힘들다. 언젠가는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만들고 있는 노래들에 구체적인 가사가 붙으면 어떨까 생각해보긴 한다.

직접 쓴 라이너 노트를 읽어 보면 "저의 모든 곡들의 가사는 제가 꾼 꿈의 내용을 묘사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장 자체가 무질서하고 이야기도 의미도 별로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라 하고 있다. 그런데 가사를 쓰는 게 그렇게 힘들다면, 굳이 가사를 붙이는 이유는 뭔가? 연주곡으로만 해도 상관 없지 않나.
- 있는 쪽과 없는 쪽 중에 어느 쪽을 골라야 한다면 노래가 있는 게 좋은 것 같아서. (웃음)

그런가. 사실 나도 원래 가사를 잘 듣지 않는다. 물론 우리 회사들 노래들은 가사가 중요하긴 하지만, 사실 우리 회사에서 제작한 노래들은 솔직히 내 취향이 아니라....
- (폭소) 이게 뭐야.

사장은 장사하는 거니까. (웃음) 그리고 음악 말고도 뮤직비디오도 인상적이었다. 스타일이 명확하게 있는 것 같다. 그 어린아이가 이불 속에서 그린 그림 같은 애니메이션. 노래를 만들 때 드림 다이어리를 통해 자신의 꿈을 기록해 놓고 그것을 바탕으로 만든다고 했는데, 뮤직비디오를 만들 때도 생각나는 이미지를 기록해 놓은, 이를테면 드림 스케치북 같은 걸 만들어서 직접 디렉팅하는 건가?
- 뮤직비디오와 관련한 것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제작진이 알아서 만드는 거다. 음. 애니메이션을 보는 것은 좋아하긴 한다.




그의 전작 'Exit'에 수록된 'Clocca'의 official music video (from P-Vine Record)



애니메이션이라면, 몇 개 꼽아줄 수 있을까?
- 일본의 심야 방송에서 하는 애니메이션을 많이 본다. 미대생이 만든 것이나 상영회 같은 것도 자주 보러 간다. 리스트 업을 길게 할 수는 있겠지만, 아마 한국에서는 알 수 있는 게 없을 것이다.

놀라운 것 하나는 모든 작업이 자신의 방에서 이뤄졌다는 것이다. 단순한 작업도 아니고 상당히 복잡한 소리를 만들어내고 있는데... 혹시 스튜디오에서는 자기가 원하는 소리가 나오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건가?
- 제일 중요한 건 내가 쓰고 있는 많은 악기들이 내 방에 있기 때문이다. 언제라도 꺼내서 할 수 있다는 점이지. (웃음) 사실 그 정도 밖에 이점은 없지만... 굳이 따지면 스튜디오에서 하는 건 금전적인 문제도 있고, 시간도 한정되어 있어서 심리적인 여유도 없다.

그러니까 그냥 편해서로군?
- (웃음) 그렇다.

이유는 좀 다르지만 ‘수공업 음반’으로 시작한 우리 역시 대부분의 작업을 방에서 해 왔다. 그런데 토쿠마루씨의 작업 같은 소리는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궁금하다. 혹시 방이긴 하지만 그냥 공간만 그렇고 장비는 스튜디오급, 그런 것인가?
- 딱히 특별한 장비를 쓰는 것은 아니다. 비결이 있다면 오래 작업하는 것이다. 곡을 작업해 놓고는 녹음과 믹싱을 거의 1년을 하곤 한다. 한 노래를 가지고 3개월 작업하고선 3개월 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가 다시 3개월 작업 하는 식으로.  

사실 이런 질문을 드린 것은 토쿠마루씨의 음반을 마음에 들어 하는 우리 회사 뮤지션이 있어서 혹시 작업을 부탁드릴 수 있을까 해서다. (웃음)
- 그렇군. 그런데 내 작업 이외에 다른 사람 작업을 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내 작업이기 때문에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공을 들여서 할 수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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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피아노와 섹스 피스톨즈. 그리고 미국 데뷔

음악 하는 것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다른 데는 거의 관심이 없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는다. 음악이 삶에서 제일 중요한 요소인 것 같은데, 어떻게 시작했는지 궁금하다.
- 어릴 때부터 클래식 피아노를 했다. 초등학교 때 친구들하고 장난스럽게 밴드를 만들기도 했고. 그러다가 재미를 느껴 계속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청소년기에 와서는 역시 펑크가 하고 싶었다. 그래서 좀 하다 보니 나랑 안 맞는다고 느꼈고, 결국에는 지금 이런 것을 하고 있다.

펑크라. 지금 하고 있는 음악과는 간극이 큰 것 같다. 악기를 백 개나 쓰는 것은 펑크의 스리코드 주의와 상반된 것 아닌가.
- 펑크의 자세가 마음에 든다. 모든 것에 대해 부정적이면서 동시에 긍정적이기도 한 무엇인가. 그리고 펑크를 한참 들을 때, 섹스 피스톨즈(Sex Pistols)의 음악을 좋아했는데, 그렇게 듣다보니 그들이 쓰레기라고 씹어대는 다른 밴드들의 음악이 뭔지 궁금해졌다. 예를 들면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 같은 것. 그렇게 해서 다른 음악들도 듣게 되고 좋아하게 되었다.



Sex Pistols 'God Save the Queen'


나이 차이가 한 살 밖에 나지 않아서 그런가. 나도 똑같다. 내가 십대 때 한국에서 섹스 피스톨즈의 음반이 처음 라이센스가 됐었고, 그래서 나도 그걸 듣다가 핑크 플로이드를 듣게 되고, 그래서 펑크 밴드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는데 결국 이것저것 마음대로 안 되어서 이렇게 되고 말았다. 펑크 밴드라고는 하나도 없는 음반 제작사의 사장이 된 것이다. (웃음) 그래도 한번 해 보고 싶긴 한데...

- 같이 만들어볼까?

능력도 안 되고, 일본어도 안 되고, 아마 뮤지션들이 깔 볼 것 같다. 회사가 망하기 직전이라면 해 볼 수 있겠지.
- (웃음)

섹스 피스톨즈나 핑크 플로이드 외에도, 다른 매체의 인터뷰에서 비치 보이스(Beach Boys) 등을 언급한 것을 본 적이 있다. 영향을 받은 뮤지션이 있나. 혹은 영향을 넘어서 질투를 느끼는 대상이 있는가?
- 있다. 사실 모든 밴드에 질투를 느낀다.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하고 있는 밴드들. 비치 보이스도 그런 존재다.

비치보이스의 어떤 면이 특히 그러한가?
- 듣기 좋은 멜로디. 귀에 꽂히는.




Beach Boys 'God Only Knows'




그럼 혹시 그밖에도 몇몇 영향을 받은 뮤지션을 꼽을 수 있는가?

- 어제도 밴드 ‘achime’의 권선욱씨와 얘기를 나눴지만, 사실 미디어가 그런 질문을 할 때마다 곤란하다. 많은 음악을 들어서 내 안의 베스트가 계속 바뀌는데.

그런가. 그래서 나 같은 경우에는 늘 준비해둔다. 예를 들면 요즘은 픽시스(Pixies)와 펄프(Pulp).
- 나도 예전에는 그렇게 준비를 했다. (웃음)

토쿠마루씨의 이력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대단하다고 느껴지기도 하는 것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데뷔를 했다는 점이다. 사실 미국하면 대중음악을 하는 사람에게는 동경의 땅 아닌가. 한국에서 인디 하는 사람들은 엄두도 못 낼 일을 했다는 사람이다.
- 그게 아니다.

음? 미국에서 데뷔 앨범을 낸 것이 아닌가?
- 일본에서 활동을 하다가 미국에서 낸 것뿐이다.

일본 위키피디아를 보니 그렇게 나와 있던데. 그럼 미국에서 활동한 게 아닌가?
- 그렇다.

실망이다. 동경의 땅에서 혈혈단신으로 역경을 딛고 일어선 뮤지션의 모습을 상상했는데.
- (폭소) 2년 반 정도 살면서 잠깐 재즈 밴드 활동을 하긴 했다. 하지만 데뷔 앨범을 낼 무렵에는 일본에서 음악을 하고 있었다.


토쿠마루 슈고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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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 미국 뉴욕의 인디 레이블 Music Related에서 데뷔 앨범 'Night Place' 발매. 일본어 가사의 음악임에도 불구하고 이례적으로 Wired, Rolling Stone 등에 관련 기사 게재
2005년 | 두번째 앨범 'L.S.T' 발매. 이듬해 일본에 이어 유럽과 뉴질랜드에서 발매. 프랑스와 스페인을 경유하는 첫 유럽 투어.
2007년 | 일본의 P-Vine Records에서 세 번째 앨범 'Exit' 발매. Teenage Fanclub의 Norman Blake 등 여러 유명 뮤지션이 절찬.
2008년 | Fuji Rock Festival, Miyako Festival, Nano-Mugen Fest. 등에 출연
2009년 | SummerSonic, Rock in Japan Festival, Roskilde Festival 등에 출연
2010년 | 네 번쨰 앨범 'Port Entropy' 발매. 발매 후 영국, 벨기에, 프랑스, 싱가폴 등에서 투어.




그럼에도 첫 번째 음반을 미국의 인디레이블에서 냈다는 것은 아시아에서 활동하는 뮤지션으로서는 이례적인 일인 건 사실이다. 어떤 경위로 그 쪽 회사와 작업을 하게 됐나?
- 일본에 살 때 외국인 친구가 있었다. 데모를 들려줬는데 그 친구의 친구가 그쪽 레이블의 관계자여서 전해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쪽에서 좋다고, 음반을 내자고 연락이 왔다.

별 생각 없이 한 것이네.
- 그렇다.

실망이 자꾸 더 해간다. (웃음) 그래도 미국에서 음반을 낸 건데 별 느낌이 없었는가. 한국에서는 그런 일 있으면 신문에 나오고 그러는데.
- 사실 놀라기는 했다. 신문에 나오거나 하는 일은 전혀 없었지만. (웃음) 일본어 가사로 만든 음반이 미국에서 그렇게 받아들여질 것이라 생각해 본 적 없다. 마치 한국에서 음반을 내게 될 것이라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것처럼.

그래서 미국에서는 좀 팔렸나?
- 음반 발매 후 미디어에서 주목을 받았다. 그것 덕분에 상당히 많이 팔렸다. 몇 십만 장 그런 건 아니고, 인디로서는. 나름대로는 일본 음악이 세계로 퍼진 기폭제가 되어서 기쁜 점도 있다.

좋겠네. 부럽다.
- (웃음) 그런가.

그래서 그 이후로 세계 전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공연은 일본과 비일본 지역, 어디서 더 많이 하고 있는가?
- 지금은 일본이 훨씬 많다.

일본과 해외에서의 차이를 느껴 본 적 있는가?
- 별로.

이를테면 반응이 다르다던가.
- (곰곰이 생각한 후) 일본 사람들은 곡을 전부 듣고 박수를 치는데 유럽 사람들은 자기가 좋다고 생각하는 부분에서 박수를 친다.

그런가. 그 정도가 차이인가. 별로 차이 없네. 그럼 한국에서의 공연에서 기대하는 부분은 있는가?
- 물론 기대하고 있다. 일단 같이 하는 뮤지션들에 대한 기대가 있다. 옆 나라임에도 여태까지는 정보가 없어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는데 뭔가 한꺼번에 열리는 듯하다. 이번은 같이 공연하는 이들 밖에 못 보지만 다음번엔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많이 보고 싶다.

이번 음반이 네 번째 음반이다. 4월에 음반을 낸 이후 이런저런 활동을 하고 있는데, 이후의 계획은 있는가?
- 일본으로 돌아가면 몇 개의 록 페스티벌에 출연할 예정이다. 가을부터는 유럽 투어를 계획 중이다. 그 사이에 한국 공연도 예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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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일 얘기만 한 것 같다. 사생활 얘기도 듣고 싶다. 붕가붕가레코드 내에 토쿠마루씨와 작업하는 것을 처음에는 회의적으로 생각했던 스태프가 있었다. 그런데 공연 동영상을 보고서는 잘 생겼다면서 반드시 해야한다며 마음을 바꿨다. (일동 폭소) 그래서 묻고 싶다. 연애는 하고 있나? 곤란하다면 노코멘트 해도 좋다.
- (잠시 생각하더니만) 그럼 노코멘트. (웃음)

이번에는 며칠 다녀가시는 거라 별로 준비를 못했지만, 다음번에는 접대를 제대로 해드려야지 싶다. 혹시 한국에서 이건 먹어야겠다 거나 어디를 가고 싶다, 혹은 만나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 그런 게 있는가? 술은 안 좋아한다고 했고, 매운 음식은 좋아하나? 김치찜이란 음식을 아주 잘하는 곳이 있는데.
- 밴드의 다른 멤버들은 다 좋아해서 먹고 싶기는 하다. 밴드 멤버들은 진짜 좋아하는데 이번에는 같이 못 와서 아쉽다. 다음에 올 때는 자기가 할 게 없어도 꼭 끼워달라고 했다. (웃음)

그런가. 많이 오면 비용 문제 때문에 곤란한데. (웃음) 듣기로는 인사동에 가서 한국 악기를 사려다가 실패했다던데.
- 그 북이 많이 달린 악기(오고북을 말하는 듯)를 사고 싶었다.

그거 되게 큰 데 어떻게 들고 가려고.
- 글쎄. 생각 안 해 봤다. (웃음)

이제 대충 정리를 하자. 인터뷰 오기 전에 긴장을 많이 했다. 세계적으로 활동하는 뮤지션이라니. 그런데 막상 만나 보니 별반 색다를 것도 없고, 한국에서 흔히 관찰할 수 있는 인디 뮤지션과 비슷하다는 느낌이다. 좀 멋지게 생긴. (웃음) 토쿠마루씨는 어떤 인상인가?
- 나도 안심했다.

무엇이 그런 느낌을 받게 했나?
- 나도 잘 모르겠다. 그냥 분위기? (웃음) 잘 모르겠다.

그럼 마지막으로, 붕가붕가레코드의 팬들과 한국의 청자들에게 한 마디 해 달라.
- 정식으로 한국에서 네 번째 음반을 릴리즈하고 공연도 할 수 있게 되어서 정말 기쁘다. 아무쪼록 내가 하고 있는 것들이 한국에서도 점점 퍼져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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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가 끝났고, 네 시간 후 그의 공연이 시작되었다. 그의 공연에 관해서도 궁금한 게 있었다. 100 여 개의 악기가 쓰였다는 이 복잡한 음반의 소리를 대체 혼자서 어떻게 재현해낼 것인지. 대기실에서 앉아 있던 내내 통기타 한 대 만을 만지작거리던 토쿠마루 슈고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의문은 얼마간의 우려로 변질되기 시작했다. 인터뷰 때의 수줍었던 모습까지 오버랩하여, 혹시나 통기타 소리 가늘게 울려 퍼지는 맥아리 없는 공연이 되면 어쩌나 싶었다.

하지만 공연장에서 그가 보여준 모습은, 확실히 겪어 온 아수라장의 숫자가 다르다는 느낌이었다. 통기타 한 대로 그 복잡한 사운드의 핵심을 얼추 재현할 뿐만 아니라, 노래의 흐름에 맞춰 역동적으로 소리를 쥐었다 폈다 하는 모습은 실로 인상적이었다. 그 날 공연을 봤던 장기하의 얘기를 빌려 오면 “통기타 한 대 들고 혼자 했는데도 그 압도감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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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공연이 아쉬웠던 듯, 마지막에 “다음번엔 밴드와 같이 오겠습니다.”라는 남기고 토쿠마루 슈고는 내려왔다. 무대에서 내려온 그는 이내 인터뷰 때의 그 조심스러운 젊은이로 돌아와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고맙습니다.)”라는 말을 반복했다. 그리고 이어진 뒤풀이. 술을 즐기지 않는 토쿠마루를 배려하여 사상 최초로 술을 (거의) 배제한 뒷풀이를 하면서, 실로 손발을 다 써가면서 일본의 뮤지션과 한국의 뮤지션(들)은 대화를 나눴다. 주로 붕가붕가레코드의 소속 뮤지션들을 중심으로 한 한국의 뮤지션들이 토쿠마루를 귀찮게 하는 구도가 성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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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잖이 시간이 지난 후, 다음에 보자며 고맙다며 훌륭했다며 연신 인사를 하며 토쿠마루 슈고는 숙소로 돌아갔다. 하루 사이에 그에 대한 인상은 많이 바뀌어 있었다. 뭐 “십년 알고 지낸 지기가 된 기분이었다.”라는 건 솔직히 뻥이 심하고, 그래도 최소한 글로벌한 무대에서 활약하는 젊은 천재라는 느낌은 한국의 인디씬에서 활동하는 여느 젊은 뮤지션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음악 이외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고, 섹스 피스톨즈를 듣고 음악을 시작했으며, 편하다는 이유로 모든 작업을 자기 집에서 하는. 물론 미국에서 데뷔하여 유럽 투어를 다니는 뮤지션이긴 하지만, 그것도 어떤 치밀한 계산이 있어서라기보다는 그저 어쩌다 보니 운이 좋아서. 아마 그래서 그도 어딘가 어설픈 느낌이 없잖아 있는 우리 회사에 분위기에 도리어 안도했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8월 18일에 그의 네 번째 음반 ‘Port Entropy'가 국내에서 정식 발매된다. 상당히 좋은 음악이다. 보증한다. 그리고 아직 일정은 잡히지 않았지만 아마 가을 쯤에 다시 한번 그가 자신의 밴드를 대동하고 한국에 방문할 것이다. 아마 괜찮은 공연일 것이다. 이건 이미 검증이 됐다. 그러니, 아무쪼록 그의 음악과 조우할 수 있는 기쁨을 최대한 많은 이가 누릴 수 있기를. 그렇게 되면 아마 우리가 일본으로 진출하는 것도 좀 더 원활해지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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