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작의 관찰노트]밴드 아침(Achime)의 보컬 권선욱과의 인터뷰_라기 보다는 거대한 잡담 2편

좋은 achime 입니다




“어중간한 인간”
 
붕작 : 어떤 시기에 ‘다른 선택을 했었더라면 다르게 될 수도 있었을텐데.’ 라고 생각하는 그런 때가 있어?

선욱 : 일단 첫번째는 예고(예술고)에 들어간 것. 예고에 안 갔으면 그렇게 예술을 하려는 인간은 안 됐을 거다. 틀림없이. 근데 예고에 들어가서 뭔가 자기를 표현하는 즐거움을 알아버렸다고 할까. 그랬으면 안됐는데...
 
붕작 : 그렇게 안 했으면 뭐가 되는데?
 
선욱 : 자기를 표현하지 않고 뭔가를 분석하면서 살았겠지.
 
붕작 : 난 우리 부모님이 느닷없이 시골로만 이사를 안 갔어도 보통의 아이로 자랐을 것 같아. 근심 걱정이 적고 많이 즐거운 아이로 자랐을지도 몰라.
 
선욱 : 난 정말 모르겠어.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도시에만 살아서 그런 기분이 어떤 건지 잘 모르겠어.
 
붕작 : 그니까 그건...되게 외로운 거다.
 
선욱 : 그랬겠지, 아무래도.
 
붕작 : 그리고 쓸데없이 책을 너무 많이 읽었어.
 
선욱 : 그건 좀 문제인 것 같아. 어렸을 때 어른들이 읽는 책 많이 읽으면 안돼. 그래서 그 등급이 괜히 있는 게 아니라니까. 책에는 등급이 없으니까 애들이 아무 생각없이 접근을 하는 거야.
 
붕작 : 그래서 나를 오랫동안 지켜본 우리 언니는 자식들에게 쓸데없이 책을 많이 읽히는 어리석은 엄마가 되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중이지.
 
선욱 : 그래, 위인전이나 과학도감 그런 걸 많이 읽혀야 돼.(웃음) 동화 그런 거. 근데 요샌 동화도 좀 그래. 요새 젊은 사람들이 쓰는 동화에는 철학이 너무 많아. 옛날에는 어른의 상상력을 어른이 풀어쓴 그런게 많았다면.
 
붕작 : 그래서! 그래서! 유년기와 청소년기가 너무 쓸데없이 복잡해서, 거기에 너무 진절머리가 난 나머지 막상 커서 머리가 촘촘해진다거나, 밀도 높은 결과물을 만들어내야 할 때 머리가 멎어버리는 것 같아. 반작용으로.
 
선욱 : 근데 내가 볼때는 (붕작은)보통의 아가씨들보다 한 3600배 정도는 더 복잡한 로직이 있는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해?
 
붕작 : 으흐! 아닌데.

선욱 : 자기는 그런 걸 거부하고 단순하려고 하지만 내가 볼 땐 전혀 그렇지 않거든. 어느쪽이냐 하면 시리어스한 편.
 
붕작 : 어우 그거 되게...되게 싫어해서 걷어내고 걷어내고 걷어내서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왜? 뭐 그런 게 있었나?
 
선욱 : 아니, 그냥. 그냥. 보통(여자랑)은 이런 얘기 안 하니까.
 
붕작 : 그럼 무슨 얘길 해?
 
선욱 : 그게 뭔가 상상도 안 되지! 그거 봐, 그게 다른 거야!
 
붕작 : 싫어하는데. 심각하고 그런 거.
 
선욱 : 싫어해도 어쩔 수 없는 게 있다니까.
 
붕작 : 이건 뭔가 잠이 오지 않는 어느 날 밤에 생각날 법한 발언인데?
 
선욱 : 근데 나도 상당히 그런 편이라서. 그렇기 때문에 보통의 우리 나이 또래의 애들과 얘길 하면 전혀 안 통해서 결국 얘기를 듣고만 있고, 맞장구만 쳐주게 되는 거다. 그러다가 아까 얘기한 그런 상냥한 인간이 되어버리지. 어느쪽이냐 하면 그런 얘기들엔 관심도 없는데 말야.

예를 들면 웹디자인을 하는 애와 만나서 차를 마시면 직장 상사에 대한 얘기라든지 결혼은 어떻게 해야하는지 모르겠다든지 지금 사귀고 있는 사람에 대한 얘기라든지 뭐...여행을 가고 싶은데 어딜 가고 싶다는 얘기라든지, 그런 얘기를 보통 안 하잖아, 우리는. 하긴 상사에 대한 얘기는 최근에 하기 시작하긴 했군.

붕작 : 으하하하하
 
선욱 : 근데 그건 직장 상사에 대한 얘기라기보다 새롭게 접한 한 인간유형에 대한 얘기에 가깝지. 하여간 그래서 아까 말한 여자애가 하는 말을 듣고 있으면 어떤 리액션을 해야 되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인생에 대한 경험이 전혀 없으니까. 잘 들어주는 입장이 된단 말야. 필연적으로.
 
붕작 : 난 잘 모르고 있었는데 어느 정도는 잘 들어주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 정도도 안 되는 사람인가봐. 최근에 어떤 말을 듣기 했지.
 
선욱 : 누가 뭐라고 하던가. ‘어흐흐엉엉. 넌 어쩜 그렇게 무심할 수가 있냐?’ / ‘에에?’ 이런 상황?(웃음)
 
붕작 : 하하 그렇다면 그런 상황. 근데 뭐 그렇게 놀랄 일은 아니지. 재미가 없는 걸 재밌게 들어줄 깜량이 안돼.
 
선욱 : 보통 그런 애들 둘이 모이면 그런 얘기를 진짜 재밌게 한단 말야. 근데 그 중에 나나 당신같은 사람이 한 명 들어가서 셋이 된다거나 아니면 단 둘이 된다던가 하면 그 재밌게 얘기를 꽃피울 밸런스가 무너지는 거야. 그게 긍정적으로 나타나면 ‘넌 내 얘기를 참 잘 들어줘.’ 가 되는 거고, 부정적으로 나타나면 ‘넌 어쩜 그렇게 무심할 수가 있냐.’ 가 되는 거다.
 
붕작 : 그럼 당신이 긍정 파트이고 내가 부정 파트인가.
 
선욱 :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케이스바이케이스겠지. 그런 경험들을 계속 해가면서 자기는 어중간한 인간이다 라고 느끼는 것 같아. 그렇다고 진짜 막 특별한 애들 사이에 끼면 그땐 그때대로 말이 안 통해.(웃음)
 
붕작 : 지금은 잘 기억 안 나는데 한 때는 그런 때도 있긴 했다. ‘도대체 말을 어떻게 하는 거였더라...’ 싶은 때.
 
선욱 : 아아...<인간실격>이네, 진짜.

붕작 : 아니야아니야. 그 정도는 아니야.
 

“뒤돌아보는 타입과 뒤돌아보는 사람들을 관찰하는 타입”

사용자 삽입 이미지 2010년 12월 25일 토쿠마루 슈고 밴드 공연에 통역으로 잠시 나온 권선욱 (곽원석 촬영)

선욱 : 하여튼 난 원래부터 주변자라고 하기는 뭐한데 관찰하는 걸 좋아하는 인간이다. 어떤 사건에 뛰어드는 건 아니고 그게 어떻게 되는지 끝까지 보는 타입. 그런 태도도 어중간한 그런 걸 만들지 않았을까 해. 붕작은 관찰하는 거 좋아해?

 
붕작 : 응.
 
선욱 : 그게 어떤 거냐면, 교실이 있어. 수업이 40분 짜리면 20분정도 진행되고 있었는데 뒷문으로 한 애가 늦게 들어왔어. 그럼 도대체 어떤 새낀가 하고 다들 뒤돌아보잖아. 그럼 나는 그 뒤돌아보는 애들의 표정이 궁금해서  그들을 살펴보는 거지. 말하자면 ‘뒤돌아 보는 타입’과 ‘뒤돌아 보는 애들을 살피는 타입’으로 나눌 수 있는 거다. 그 중 나는 후자인 거지.
 
붕작 : 글쎄, 같은 얘기인지 모르겠는데 남들이 기억 못하는 장면을 기억하고 있는 편이고, 이성적 호감같은 게 아니라 버스에서 우연히 본 사람인데 따라 내려서 무엇이든 물어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종종 하긴 해.
 
선욱 : 그래, 그게 관찰자의 입장이라니깐. 그리고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작가의 시선이기도 해. ‘그건 숨길 수 없겠군요. 아무래도!’
 
붕작 : 그런 의미의 인터뷰를 하고 싶었는데. 동대문에서 단추를 파는 아줌마랄지. ‘왜 지퍼도 아니고 옷감도 아니고 단추인가요?’ 하여간 사람이 궁금해.
 
선욱 : 그래, 그게 보통이 아닌 부분이야. 사람에 대해서 궁금해하지 않고 살아가는 수십억명의 삶들이 밖에 있다니까.
 
붕작 : 난 끈기가 없는 편이라 뭔가를 좋아한다거나 그런 게 오래가질 않는 편이다. 그런데 어떤 한 사람을 오래 좋아하는 게 아니라 사람이라는 개체에 대해서는 관심과 생각이 많지. 재미없는 사람에 대해서는 굉장히 지루해하지만, 저런 재미없음을 계속 유지하는 인간형 자체는 흥미롭다고 할까.
 
선욱 : 세상이 그런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것에 신비감을 느끼면서.

붕작 : 믿을 수 없게 재미없는 사람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들어. 어떻게 하면 저 사람은 저렇게까지 재미없는 사람으로 자랐을까. 유년기부터 캐보고 싶다. 가족을 비롯해서 주위 사람들을 탐방하면서.
 
선욱 : 나는 멋대로 상상해버리는 편이다. 고증을 거치는 과정이 싫은 건 아니지만 먼저 머리가 돌아가버리는 거다. 쟤는 분명 어렸을 때 어쩌구 저째서 저렇게 된 거겠지? 그럼 얘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는 거다. 그래서 나는 픽션을 좋아하나봐. 픽션에 한참 빠져있는 인간이라서 어쩔 수 없어.
 
붕작 : 나는 그림을 그려도 있는 걸 보고 내 방식대로 해석해서 그리는 쪽이다.
 
선욱 : 객관적인 관찰자같아.
 
붕작 : 헹-
 
선욱 : 그러니까 붕작은 객관적인 관찰자이고, 나는 정말 주관적인 관찰자인 거야.
 
붕작 : 그래서 픽션을 쓸 수 있구나. 그렇구나.
 
선욱 : 지금 얘길 듣고 갑자기 생각난건데 한 사람에 관한 사실을 수집해서 구성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평생 해본 적이 없어. 그런 부분이 신기한데? 새로운 발견이야 이건.
 
 
“보통의 평범함, 그게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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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월 6일 사이키델릭펙토리 때. 풋풋하다. (조나영 촬영)



붕작 : 관찰 얘기를 해서 말인데, 내가 11년째 지켜보고 있는 친구가 있다. 걔는 정말 대단하다 싶을 정도로 평범하다. 드라마에 ‘평범녀’라는 스테레오 타입으로 나올 법한 그런 애라고 3-4년을 생각했었는데 5-6년차에 접어들면서 무슨 얘기를 하다가 그게 아닌 거다.
 
선욱 : 크으...
 
붕작 : 나는 죽을 때까지 걔를 모를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걔랑 나랑 같이 앉아있으면 범상한 기준에서는 굳이 따지자면 내가 더 독특한 쪽일 것 같지만...그러니까, 좀 산만하고 보통의 선택을 하면서 살고 있지 않으니까.

선욱 : 그렇지그렇지.
 
붕작 :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지만 내 생각에는 얘가 더 알 수 없는 사람이라는 거다. 그래서 결론은 ‘단언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정도다. 아까 특별하다고 생각했던 애가 썩 생각보다 그렇지도 않을 수 있다는 것과 어떻게 겹치는 지는 잘 모르겠지만.
 
선욱 : 뭔 말인지 알 것 같다.
 
붕작 : 그래서 확언이라는 걸 잘 못하는 것 같다. 내 말이나 글에 자주 나오는게 맨날 ‘-이랄까’, ‘이럴수도’, ‘이것이면서 저것’ 식으로 판단을 끝까지 유보시키는 방식이다.

선욱 : 납득이 간다, 그런 얘기. 그렇게 치면 중학교 때 사귀었던 여자애가 뭔가를 알고 있었어. 내가 ‘나는 The one이 될 거야!’ 라고 서슴없이 얘기하는 젊은 피의 남자애였는데 그 여자애가 내 얘기를 재밌게 들어주더니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한다는 말이 ‘근데 너 평범하게 산다는 게 정말 힘든 거 알아?’라고 했었다. 그 당시 나는 그 말의 뜻을 이해도 못했고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았는데 이 얘기를 들으니까 그 말이 생각이 나네.
 
붕작 : 알고 말했나...
 
선욱 : 미울 정도로 정곡을 찔렀던 거 같아. 그리고 걔는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고딕메탈에 빠졌어.
 
붕작 : 그게 뭐야?

선욱 : 시-꺼먼 옷 입고 고전적이면서 어두운 이미지들을 노래하는 메탈음악이지. 또한,  ‘아라키’라는 사진작가의 작품에 푹 빠진 그런 애가 됐어.

붕작 : ‘어이쿠 깜짝이야’ 라고 하지만 계속 들여다보게 되는 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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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aki Nobuyoshi의 사진 중 하나. 고르고 골라서 옷을 입은 사진을 찾아냈음.

선욱 : 어. 그런 애가 그런 말을 했다니까. 자신의 갈 길을 알고 있었던 것일까!  어때? 그 친구는 겉으로는 평범한 거 아냐 그치?

 
붕작 : 그니까 걔가 살면서 하는 선택들이란 게 어우 하품이 날 정도로 뻔하단 말야. 그런데 일면들을 보면 엄청나게 괴로워하면서 그 평범의 지점들을 겨우 잡거나 못잡거나 하고 있다니까. 쉽게 가는 게 아니고.
 
선욱 : 그래 좀만 파헤치고 보면 그렇다니까. 내가 사귀었던 여자애가 그걸 말했던 것 같아. ‘그걸 지키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야 하는지 너는 알 지도 모를 거다. 이 멍충이!’
 
붕작 : 근데 또 별 생각없이 그냥 사는 사람들도 있는데 뭘. 내 또다른 친구처럼.
 
선욱 : 크크크크크
 
붕작 : 나는 이 또다른 친구를 ‘세상과의 소통 창구’로 만나고 있단 말야. 이쪽 바닥에는 맨날 그렇고 그런 사람들이 있으니까, 이게 세상인가 라고 생각하고 살고 있어, 근데 걔를 만나면 아 아닌 거지. 걔와 나는 도무지 합쳐지는 지점이라곤 야한 농담같은 것밖에 없는데 계속 만나는 건 뭔가 동물원에 가는 기분인거야.. 서로를 개미핥기처럼 보는 거지.
 
선욱 : 좋겠다. 그런 사람이 있다는 거. 나는 잔뜩 있는데 소통의 창구가 될만한 사람은 없어.  내 주변엔 점점 이해하지 못할 일들과 사람들만 늘어갈 뿐이야. 그렇다고 뭐 지금 내가 몸 담고 있는 활동영역의 사람들이 절대적으로 특별하다거나 그런 건 절대 아닌데.
 
붕작 : 근데, 그래서, 결국, 뻔한 얘기지만 그렇게 비범한 사람도 없고 그렇게 평범한 사람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니까.
 
선욱 : 그래서 난 도무지 확신에 차서 단언하는 사람들은 정말 무섭기까지 해.
 
붕작 : 난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편. 혹은 귀엽지. 진심으로.
 
 



붕가붕가레코드 대중음악 시리즈 no. 11
어스름하고 선연하게, 당신의 마음과 공명
achime(아침) [Hyperactivity] (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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