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KBS 2TV 유희열의 스케치북 출연 붕가붕가레코드 라인업

붕가붕가레코드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지속가능한 딴따라질을 지향하는 인디 레이블붕가붕가레코드

2005년 신림-봉천 지역 음악인들의 모임인 ‘쑥고개청년회’는 “혼자 사랑하는 자가 혼자 살아남는다”는 모토 아래 개와 고양이가 스스로 성욕을 해소하는 행위인 ‘붕가붕가’에서 말을 따온 붕가붕가레코드(BgBg Records)라는 독립 음반사를 탄생시켰다. 이듬해인 2006년에 발표한 《인디의 미래(Indie Music Future)》라는 보고서는  ‘인디 음악인이 자신의 음악을 표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손상시키지 않는 범위에서 생계적인 필요를 충족시키는 음악 작업’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제기, 그에 따라 ‘생계적으로 건전하고 지속 가능한 딴따라질(Survivally sound and sustainable DoReMi:SSSD)’의 개념이 확립됐다. 이 개념은 좁게는 독립 음악의 지속 가능성을 의미하지만, 넓게는 재능 있는 청춘들이 보다 쉽고 간편하게 음악 작업을 할 수 있게 함으로써 대중 가요 전체가 지속 가능할 것을 지향하고 있기도 하다.

이를 위한 전략으로 공장제 대량생산 기반의 기존 방식을 과감하게 탈피, 수공업소형음반™이라는 새로운 포맷을 개발, 간결한 소리와 덤덤한 디자인, 그리고 수공업 생산을 특징으로 새로운 흐름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중 아홉번째 시리즈인 장기하의 《싸구려 커피》로 대중적인 호응을 얻은 이래, 100 종의 수공업 소형음반이 나올 때 뭔가는 바뀌어 있을 것이다는 일념을 품고 일보 전진과 반보 후퇴를 거듭하고 있다.

2005년 창립 이래 총 11개의 공장제 대형음반과 18개의 수공업 소형음반을 발매했다. 현재 술탄 오브 더 디스코, 장기하와 얼굴들, 불나방 스타 쏘세지 클럽, 치즈스테레오, 아침, 생각의 여름, 눈뜨고코베인, 미미시스터즈 등의 아티스트들이 소속되어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신파와 열정으로 가득한 최후의 느와르 마초
조까를로스 of 불나방 스타 쏘세지 클럽

나약한 사나이들의 식어버린 청춘과 그로 인한 궁상에 치를 떨던 아티스트 조까를로스는 2005년 그의 의지에 동의하는 여러 음악인들을 모아 '불나방 스타 쏘세지 클럽'을 결성한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얼터너티브 느와르 마초 라틴 음악을 근간으로 하는 그들은 인생을 관통하는 기승전결 확실한 이야기에 광폭하게 강렬하면서도 처연할 정도로 구슬픈 정서로 홀로 자취하는 여대생들에게 어필, 상당한 지지를 얻기 시작한다. 하지만 유명해지면 재미 없어진다고 생각하는 조까를로스 이하 멤버들의 고질적인 심드렁함 때문에 대중들은 이들을 미처 알지 못했다.

그러나 어느날 "악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마초는 죽어서 콧수염을 남긴다"는 깨달음을 얻은 조까를로스는 자신도 뭔가 남겨야겠다는 생각에 2009년  EP 《악어떼》와 1집《고질적 신파》를 발매했다. 하지만 이 음반들을 통해 착실히 인기를 얻어가는 와중에도 그는 다른 계획을 품고 있었으니 그것이 이름하여 '고질적 뮤지션의 길' 은퇴부터 자서전 집필, 돈을 위한 재결성까지의 계획을 담고 있는 이 로드맵에 따라 그는 결국 2010년 9월 EP 《석연치 않은 결말》을 마지막으로 은퇴하게 되었다.

이후 조까를로스는 그의 신변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잠적을 했으나 그의 마지막 노래 'R&B'에서 드러난 그의 천재적인 재능을 아깝게 생각한 업계 관계자는 그를 끊임없이 추적하였다. 결국 저잣거리의 소문으로 조까를로스가 지리산에 칩거하고 자서전을 집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 붕가붕가레코드와 KBS 관계자들은 삼고초려 끝에 방송 출연의 승낙을 얻어내게 된다.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그의 한시적인 복귀 무대는 바로 이렇게 성사가 된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렇게 그들은 새로운 우주를 만들었다
눈뜨고코베인

눈뜨고코베인은 깜악귀(보컬/기타) 연리목(건반) 목말라(기타) 슬프니(베이스) 장기하(드럼)의 라인업으로 2002년 결성되었다. 2003년 첫 EP인 《파는 물건》을 발매한 이래 산울림을 위시한 한국 록을 기반으로 다종다양의 음악을 수용한 독자적인 스타일과 더불어 듣는 이의 허를 찌르는 특유의 개그 센스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눈뜨고코베인’이란 이름에서 풍기는 뉘앙스로 인해 발에 채일 정도로 많았던 그저 그런 엽기 밴드로 취급되었으나, 그들과 함께 등장했던 밴드들이 하나 둘씩 명멸해가는 동안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물이 2005년 발매된 1집 《Pop to the People》이다.

2008년 발매된 2집 《Tales》에 이르러서는 적잖은 시간 동안 멤버 교체 없이 축적되어 온 밴드의 앙상블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력한 사운드와 함께 일상의 한 단면을 환상적인 이야기로 승화시키는 깜악귀 특유의 노랫말을 선보였다. 특히 이 음반은 밴드 스스로 ‘조울증에 걸렸지만 태연한 척 하는 하드록/펑크’라 지칭하는 특유의 스타일과 함께 아빠를 살해하고 벽장에 감춘 엄마, 고속도로에 사는 원숭이, 우주 최고의 섹시 금붕어, 그리고 아들에게 지구를 지키지 말 것을 유언하는 슈퍼 히어로 아버지 등 쉽게 상상하기 힘든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전무후무한 세계를 구축했다.      

2009년 드러머 장기하가 탈퇴하고 파랑이 새로운 멤버로 참여한 이후 한동안 별다른 활동이 없었으나 이듬해인 2010년부터 본격적으로 음반 작업을 시작했다. 경박하나 육중하고 진부하나 참신하고 환상적이면서도 현실적인 모순적 측면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나로 통합하고 있는 그들은 활동 경력 10년차에 이르는 중견 밴드로서 이제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없는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 가고 있다. 2011년 그들의 세 번째 정규음반인 《Murder’s High》에서 한층 깊어진 그들의 새로운 우주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대표작

3집 《Murder’s High》('성형수술을 할래' 수록)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깊은 잠을 깨고 다시 전진하는 한국 대중음악의 오래된 미래
장기하와 얼굴들

2008년. 홍대 인근 한 클럽에서 ‘장기하와 얼굴들’이라는 이상한 이름의 밴드가 데뷔했다. 《싸구려 커피》라는 이상한 타이틀을 가진 수공업 음반을 발매한 직후의 일이었다. 비록 공연장에는 알음알음 모인 한 줌의 관객들 밖에 없었지만 괜찮은 노래와 화려한 무대를 겸비한 비범한 자질을 선보인 그들은 그 자리에 모인 관객들을 전원 자지러지게 만들었고 이후 공연이 거듭될 때마다 그들에 열광하는 팬들이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오디션을 거쳐 나간 쌈지 싸운드 페스티벌에서 일약 ‘장교주의 부흥회’라는 명성을 얻은 인상적인 무대를 선보인 그들의 인기는 인터넷 공간에서 새로운 대세로 자리 잡으면서 갑작스레 폭발했다.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2009년. 드디어 그들의 첫 정규 음반인 《별일 없이 산다》가 발매된다. 옛날 사운드의 냄새와 새로운 형식의 신선함을 겸비한 장기하와 얼굴들의 음악은 낯선 것을 꺼리면서도 새로운 것을 갈구하는 청자들이 원하던 바로 그것이었고, 결국 발매 한 달 만에 3만장의 판매고, 통산 판매량 5만장을 기록하는 기염을 토한다. 하지만 갑작스런 대중적 인기와 쏟아지는 미디어의 관심 속에서도 그들은 앨범 제목처럼 별일 없는 듯 자기 페이스를 유지하며 착실하게 음악 활동을 이어나가던 중, 11월, 1주일 간의 단독 공연을 마지막으로 1집 활동을 중단한다. 데

2010년. 침묵의 시간이었다. 그간 페스티벌의 무대에서 몇 만의 관중을 휘두르며 부쩍 성장한 모습을 보였고 처음으로 일본에서 공연을 하며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기도 했지만 그 활동들은 모두 1집의 연장선 상에 있는 것이었다. 페스티벌에서 두 곡의 신곡을 선 보였지만 두 번째 음반을 간절히 기대하는 팬들에게는 아무래도 역부족. 하지만 장기하와 얼굴들은 묵묵부답이었다. ‘장기하’ 개인이 주목 받았던 이전의 모습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제대로 된 밴드의 면모를 갖춘 ‘장기하와 얼굴들’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렇게 다시 1년 6개월이 지나갔다.

그리고 2011년. 그 시간이 고스란히 축적된 그들의 두번째 앨범이 나온다. 6월 초 쯤에 발매된다는 것 외에 아직 자세한 내용은 베일에 가려져 있는 그들의 2집은 많은 사람이 기대하고 있는 만큼 관심도 많고 우려도 많지만, 지금까지를 돌아봤을 때 장담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 뿐이다. 장기하와 얼굴들의 행보는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다는 것. 요컨대 여태껏 장기하와 얼굴들이 왔던 길은 모두 새로운 것이었다. 그리고 이제 곧 그들이 도달한 새로운 영역을 경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장기하와 얼굴들 홈페이지

www.kihafaces.com


사용자 삽입 이미지

터번과 선글라스를 쓴 댄스 플로어의 풍운아들
술탄 오브 더 디스코

1996년 유명 기획사 ‘분가분가’에서 2500:1의 경쟁률을 뚫고 차세대 아이돌 그룹을 위해 나잠 수, 덕우엉, 김덕호 3명이 선발되었다. 이들은 기획사의 의도대로 사회와 격리된 채 혹독한 댄스 연습 및 노래 연습에 몰두했으나, 1997년 IMF 외환 위기에 휘말려 기획사가 망하고 대표는 해외로 도주하고 말았다. 이후 8년, 도망 간 대표를 쫓아 세계 각지를 배회하던 그들은 중동의 모 지역에서 왕년에 디스코의 제왕으로 일컬어 진 무하마드 B. 마니를 만나 잊혀진 전설의 음악 아라비안 펑키 소울을 전수 받고 각각 압둘라 나잠, 무스타파 더거, 김덕호로 개명, ‘술탄 오브 더 디스코’를 탄생시키기에 이르렀다.

이듬해인 2006년 귀국한 그들은 쑥고개에서 절치부심 중 주류 음악계에 등을 돌리고 독립 음악계 최초의 립싱크 댄스 그룹으로 거듭나기로 마음을 먹었다. 주황색 터번과 화려한 퍼포먼스, 그리고 이국적이면서도 박자감 있는 음악으로 전국 각지의 댄스 플로어를 하나 둘 씩 착실하게 접수하면서  2007년 첫 번째 EP 《여동생이 생겼어요》는 특유의 독자적인 스타일과 함께 탁월한 음악 및 개그 센스로 한국 대중음악계에 그들의 이름을 명백히 각인시켰다.

하지만 쏟아지는 관심 속에 회의를 느낀 압둘라 나잠은 산 속 동굴에서 면벽을 하며 아라비안 펑키 소울의 진의에 대해서 3년 간의 숙고를 한다. 그 결과 얻은 깨우침으로 이제 립싱크 댄스의 거추장스러움을 버리고 본격 밴드로 거듭나기로 마음을 먹은 그는 애초의 라인업에 J.J 핫산, 간 지하드, 오마르 홍, 카림 사르르 등의 아티스트를 영입, 7인조의 거대 밴드로 거듭난 한편 드디어 첫번째 정규 음반을 준비하기 시작한다. 늦여름, 그들이 만들어낼 전혀 새로운 그루브를 경험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