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작의 관찰노트]밴드 아침(Achime)의 보컬 권선욱과의 인터뷰_라기 보다는 거대한 잡담

이주호

전말

그러니까. 지금 내가 이걸 쓰고 있게 된 모든 시작에는 아침Achime이 있었다.

2010년 6월 가히 인상적인 때이른 더위가 찾아왔었다. 내가 매일을 앉아 있어야 했던 건물은 에어콘 교체 작업을 하고 있었고, 다섯 발짝 떨어진 옆 건물은 공사중이었다. 창문을 열면 지구가 탄생되는 듯한 소음이, 닫으면 현빈이 앞에 서 있어도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는 이유로 화를 낼 것 같은 비이성적인 복사열이 가득했다.

모니터에서는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나도 정수리부터 아지랑이로 기화되고 있는 중이었다. 눈썹까지 사라졌을 무렵 좁혀지는 시야의 끄트머리에 누군가 놓고간 아침의 1집앨범이 들어왔다. 오후 네시 경이었다. 거기엔 의뭉스런 연기가 가득차 있었고, <맞은편 미래>랄지, <무표정한 발걸음> 같은 수상한 어휘들이 적혀 있었다.

그렇게 덥지 않았더라면, 보통의 에어콘이 틀어진 곳에서 보통의 기분으로 있었다면 나는 아침을 어떻게 들었을 지 알 수 없다.

어쨌든 <Hunch> 들으면서 나는 머리통을 되찾고, 헤드폰을 낀 채 바다 속에서 가장 빠르게 헤엄치는 청새치가 됐다.

살아있구나! 뭐든 하고 싶어!

2010년 6월 23일 오후 네시경, 공사장 옆 사무실에서 아무도 모르게 연기로 사라질 뻔했던 나는 청새치가 되었고 아침을. 알고 싶어졌다. 게다가 만나고 싶어졌다.

단순한 생각은 빠른 움직임을 초래했고, 그렇게 나는 붕가붕가레코드의 작가가 되었다. 불꽃처럼 타오르는 청새치였다. 하지만 곧 본성을 되찾아 게을러졌고 별 일 없이, 별 일 만들어내지 않고 아지랭이처럼 지내고 있었다.

과정

2011년 5월 14일 Achime에서 작사/작곡/보컬을 맡고 있는 권선욱을 만났다. 지난 1년간 농담처럼 아침의 다음 앨범이 나올 때 <특집 인터뷰 시리즈>를 내겠다고 했었다. 시간은 아무렇지 않게 지나갔고 나는 특집은 커녕 아무 것도 준비하지 못했다. 하지만 도련님처럼 성실한 밴드 아침은 자기들이 짠 일정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오히려 조금 더 빨리 두번째 EP를 내놓았다.

주의

1 . 곧 있으면 어딘가에 아침의 음악적 성취나 아쉬움 뭐 그런 <음악적 평가>가 줄줄이 나올 것이다. 붕작의 관찰노트는 ‘주위를 멤돌며 미시적인 것들을 관찰함으로써 그 인간을 겨우 추측해볼 뿐이다.’라는 주의의 기록일 뿐이다. 음악적인 부분을 기대한다면 다른 인터뷰나 소개, 또는 평론을 찾아보자.

2 . 기존 인터뷰가 사실상 존대로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했다, ~하나? 체로 기록되었지만, 이번 인터뷰X 잡담O은 사실상 하대로 이루어졌기에 있는 그대로 싣게됨을 알려드린다. 피씨방에 갔다가 누가 남기고 간 장문의 채팅창을 보게 되는 기분일 거다.

3 .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완벽하게 치워놓은 방보다는 급히 뛰쳐 나가느라 미처 뒤돌아볼 겨를도 없었던 방 쪽이 더 흥미롭다고 생각한다면 아마, 재밌지 않을까.



[밴드 아침(Achime)의 보컬 권선욱과의 인터뷰
_라기 보다는 거대한 잡담]

1편 : 친절한 권선욱의 취미는 음악


일시 : 2011년 5월 13일 / 5월 17일
장소 : 삼청동 사루비아다방 / 효자동 공원 정자 / 홍대인근 까페 녹색광선
진행/정리 : 붕작
사진 : BGBG레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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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친절한 권선욱

“난 절대 친절한 사람이 아니야”

붕작 : 이건 뭐 녹음을 하고 있긴 한데 박인희씨 노래만 녹음되는 거 같아. 에이씨 녹음기 좀 사주지. 맨날 인터뷰 할 때마다 불안하게.

선욱 : 무슨 인터뷰야. 그냥 그런 식으로 써. ‘나는 인간 권선욱을 알지롱- 다른 뮤지션들은 인터뷰어로 만났지만 요번건 다르다!’

붕작 : 알기는 뭘 얼마나 안다고. 근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최근에 당신 홈피에 가서 글을 읽었는데...

선욱 : 뭐?

붕작 : 일본어 선생 얘기.


전 선생님이 메이크업으로 단정하게 얼굴을 정리한 세련된 일본 미녀같은 이미지의 여성이었다면 이번의 선생님은, 어느쪽이냐 하면 굉장히 어두운 분위기를 풍기는 생얼의 보통 일본여성이었다. 금방이라도 입에서 '아아, 능력만 되면 이런 일 따위 그만두고 싶다' 라는 소리가 쏟아져 나올 것 같은 표정을 숨기지 못 하고 있었다. 내가 스무 살 때 쯤에 그녀는 스물 여섯 일곱인가 그랬고, 내가 그녀를 마지막으로 만난 게 그녀의 서른 살 생일 정도였으니까 하여튼 선생님도 나도 참 어렸을 때였다.  그녀의 수업도 물론, 상당히 로우탠션이었다. 전의 선생님이 굉장히 앞장서서 회화를 이끄는 타입이었다고 하면, 이번 선생님은 그냥 줄곧 우리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맞장구만 쳐 주는 수준이었다. 우리들이 하는 이야기가 웃겨서 클래스 전원이 박장대소를 할 때에도 그녀는 소리내서 웃지 않고 '큭' 이라며 눈하고 입술만을 이용해서 웃었다. 난 그녀의 그런 행동들이 굉장히 '어두운 인간' 스러웠다고 느꼈고, 나는 그런 모습에 푹 빠져버렸다. 나의 이야기를 문법도 엉망인 일본어로 계속 떠드는 것에는 지쳤다. 한번쯤은 그녀가 하는 그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서 참을 수가 없어졌다.

- 권선욱 싸이월드 미니홈피 내 게시판 <일본어 선생님>중에


붕작 : 그걸 읽는데 문득 내 머릿속에서 어떤 장면같은 게 떠올랐어. 나는 처음 본 사람들에게 말을 잘 한다거나 그런 성품이 아니다. 상황에 따라 다른데. 하여튼 보통은 그냥 어색한 채로 가만히 있는 편이다. 내가 붕가붕가레코드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돼서 지산에 다같이 봉고차타고 가다가 중간에 휴게소인지 뭔지에서 쉴 때였는데, 나는 혼자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더워하면서 멍때리고 있었단 말야. 근데 그때 당신이 와서 말을 걸어서 사실 좀 놀랐다. 별로 친절하게 생긴 인상도 아니고.

선욱 : 그래. 난 친절하지 않은 인간이다.

붕작 : 어쨌든 나는 ‘저 사람이 의외로 말을 걸었다.’라는 느낌이었는데. 그 당시 나란
사람은 당신의 어쩔 수 없이 뿜어나오는 그 어떤,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무차별한 사랑의 수혜자였나. 아니면 무리에 끼지 못하는 어떤 한 존재를 왠지 챙겨주게 되는 그런 타입의 사람인가. 뭐 그런 걸 최근에 당신이 쓴 그 단편을 읽으면서 생각했다.


선욱 : 어느 쪽이라고 생각하나?

붕작 : 사실 둘 다 같은 말이지.

선욱 : 음...나랑 똑같은 오라가 풍겼기 때문이었다. 록 페스티벌을 싫어하는 오라를 풍기고 있었다. 이것은 내가 구원해주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구원해줄 수 없다는 느낌.(웃음) MUSE가 공연하고 있을 때 우린 컵라면을 먹었다. (웃음) 남들은 전화도 안 받는 그 시간에.

붕작 : 근데 나같은 경우에는 그런(챙겨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사람이 생기면 되려 안그런다. 어렸을 때 약자라고 생각되는 애들을 챙겨주는 오지랖이 있었다. 그 사람을 정말로 좋아하거나 예뻐하지도 않으면서. 그건 되게 오만한 거였다.

선욱 : 못된 사람이네.

붕작 : 그래서 그런 스스로 부자연스러운 짓은 하지 않았는데 최근에 어떤 사람을 만났을 때 가슴이 답답해져 오는 걸 느꼈다.

선욱 : 왜?

붕작 : 설명하기 힘든데 어렸을 때 내가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챙기려고 했던 그 애가 고대로 커져버린 사람같았다. 정말 선한 사람같은데. 그 느낌이...아아...

선욱 : <차주고 싶은 등짝>이구나!

붕작 : 맞아맞아맞아! 그런 것 같아! 하여간 그런 의미에서 (당신은)오해를 많이 사지 않나?

선욱 : 어떤 오해?

붕작 : 친절하잖아. 약하다거나, 어둡다거나, 잘 못 낀다거나. 이런 사람들을 잘 챙겨주지 않나?

선욱 : 그렇지 않다. 내 코가 석잔데. 근데 그런 건 있다. 둘보다는 셋이 있는 게 즐겁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어서. 셋보다는 넷이 더 즐겁고. 어떤 무리가 있는데 이 사람이 없어서는 안되는 건 아니지만 있어서 나쁠 것 같지 않으면 이렇게, 손짓을 해버리는. 오세요, 오세요! 어쨌든 절대로 친절해서 그런 건 아니다.

붕작 : 별로 충분한 설명은 아니야. 친절하거든.

선욱 : 음...스무살 때 사귀었던 여자친구를 세상이 부서질 정도로 사랑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그 여자애는 다른 남자랑도 만나고 있었다. 걔가 체육대회 치어리딩을 준비해야 되서 격주로 만나야 한다니까 나같이 순수하고 상냥한 청년은 1g의 의심도 없이 그걸 믿었었지. 하지만 난 그녀에게 끝까지 그것에 대한 얘기를 꺼내지 않았어.

붕작 : 정말로 치어리딩을 했을수도 있지.

선욱 : 그 학교엔 체육대회가 없었다고.

붕작 : 으하하하하하하하하

선욱 : 하여간 내가 그 사실을 내 입으로 까발려서 그녀에게 진실을 듣는게 정말 무서웠기도 했고, 내가 그런 얘기를 해서 그녀가 상처입을 게 더 걱정됐던 게 사실이다.

붕작 : 그렇다니까. (당신의) 태생이 친절하다니까?

선욱 : 몰라. 근데 그 사건으로 안 친절해진 건지도 몰라.

붕작 : 덜 친절해진거다. 그 전에 ‘더’ 친절했던 거지.

선욱 : 그건 확실히 알았다. 남자만 개새끼는 아니란 걸. 별로 이런 얘길 할 건 아니지만...걔는 좀 예뻤다. 나 같은 남자에게는 한 스텝 더 나가있는 여자였다. 근데 나중에 재밌었던 게 그 사귀었던 여자애가...다이어트지의 비포 앤 애프터에 실린 걸 봤다.

붕작 : 비포? 아님 애프터?

선욱 : 애프터로. 그게...왜 그렇게 슬픈지. 그게 전혀 나쁘다거나 그런 건 아닌데 왜 이런 데서 사진을 찍히고 있지? 라는 기분이었다.

붕작 : 나는 옛날 남자친구가 헤어진 뒤에 어느 날 알고보니 ‘너무’ 독실한 신앙인이 된 걸 보고 뭔가...뭔가 슬펐다. 나와 함께 누구에게도 지지않게, 한심하게 청춘을 탕진하던 친구였는데. 객관적으로 보면 건강해진 것이었지만 뭔가...슬픈 기분이었다. 결국 또 다른 독실한 신앙인과 결혼해서 잘 살고 있는 것 같지만.

선욱 : 그래서. 결혼은 어쩔 건가.

붕작 : 어? 나?


이후에 과거에 비해 조금 덜 친절해졌을뿐인 권선욱과 나는 결혼에 대한 하나마나한 얘기를 한참을 주고받았다. 웬만하면 올리겠지만 정말 쓰잘데없음이 이루 말할 수 없어서 안되겠다. 간략하게 정리하면 권선욱은 일요일 오후 2시 새초롬한 옷차림으로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는 젊은 부부와 같은 확실한 이상적 부부상을 갖고 있다. 그리고 나를 독신자 유전자를 갖고 태어난 사람으로 몰아세웠다. 나는 딱히 그런 건 아니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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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이 나는 밴드 Achime

“모두들 그런 무서움을 갖고 살겠지”

다방마담 : CD 없나? 있으면 들어보자. 궁금하다.

선욱 : 없다없다!

붕작 : 있다있다! 여기여기!

선욱 : 있어도 절대로 틀어선 안 된다. 틀면 나가버릴거야 진짜. 나를 화나게 하려면 우리 노래를 틀면 된다. 저번에 까페에 갔더니 일하는 분이 나를 알아보고 친절하게 아침 노래를 틀어주는데 그때부터 잽싸게 계산을 하고 나왔다. ‘토쿠마루 슈고를 틀어주십쇼.‘이러면서.

붕작 : 크크크크크

선욱 : 어쨌든 오늘의 대화에서 절대 기록으로 남겨져야 하는 건 이번 앨범을 만드는제작 공정에 우리가 엄청나게 많은 일을 했다는 거! 여기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거다.

붕작 : 회사가 해준 일이 없다는 말인가?

선욱 : 그건 아니고...음...회사가 해준 일도 있지만 우리가 더 많이 했다 정도?(웃음)

붕작 : 아침은 원래 자립적인 밴드 아닌가.

선욱 : 그건 맞다. 분명 다른 데서 이래라 저래라 하면 그것도 못 했을 거다.

붕작 : 뭐야, 그게.

선욱 : 그 간극을 맞추는 게 힘든 것 같다. 나랑 김수열과 가장 다른 게 나는 예술혼을 100% 불태우고 싶은 거고 김수열은 최고의 퀄리티를 뽑아내서 아무도 넘보지 못하는 수준의 음악을 만들어내고 싶은 거고.

붕작 : 같은 거 아닌가?

선욱 : 다르다. 이건 음악적인 얘기가 되는데. 어떻게 얘기해야 될 지 모르겠네. 하여튼 초반에 음반이 성공해서 메이저 회사와 계약을 했다가 메이저 회사의 방식과 맞지
않아서 결국은 자기네들 레이블을 만들고 자기 음악을 하는 유명한 밴드들이 많이 있어. 그러니까... 나도 그런 전철을 밟게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을 했었는데, 한 가지 다른 게 있다면 우리 음악은 그렇게 성공을 못 했다는 거?(웃음) 그런데 김수열은 거기서 나와 생각이 다르다는 거야. 큰 바다에서 놀아야 성공을 할 수 있다 뭐 그런.

붕작 : 그 성공이 뭔데?

선욱 : 입신양명.(웃음) 돈도 얻고, 명망도 얻고. 하지만 내가 음악 만드는 사람으로서 얘기를 하자면 뭔가 대단히 좋은 음악을 만드는 건 힘들 것 같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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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신양명을 추구하는 드러머 김수열

붕작 : (음악을)하고 있다는 거 자체가 좋은가? 좀 짜증은 나도? 안 하는 것 보다는 하는 쪽이 좋은 건가?

선욱 :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 이게 뭔지 모르겠다.

붕작 : 왠지 모르겠지만 계속 하게 된 다는 건 일종의 중독인가.

선욱 : 중독은 아니고. 뭐랄까, 이를테면 나는 음악이 취미인 것 같다. 다른 애들은 취미라든가 한가할 때 뭘하냐 물으면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러 돌아다닌다든지, 게임을 한다든지 그런데 난 그런 거 다 싫어하니까. 난 한가하면 음악을 만든다. 나를 뒤집을만한 대단한 게 나오지 않는 이상 계속 이렇게 음악을 만들면서 살 것 같다. 근데 되게 애석해진 게 CD도 팔리고 그러니까 거기서부터 딜레마가 시작되는 거야. 더 팔고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는 모르겠고, 그렇다고 내가 브로콜리 너마저나 10센치같이 팝음악을 하기에는 감각이 너무 동떨어져 있고. 하여튼 미니홈피에 올린 글에도 있는데 내가 그렇게 크게 될 인물은 아닌 거 같다.(웃음) 조금씩 싸고 조금씩 먹고 그렇게 살아야 할 것 같다.

붕작 : 크크크크 자기객관화가 통렬허네.

선욱 : 그게 좋은 걸까, 나쁜 걸까? 난 한 번도 실패란 걸 안해봤을 것 같은 뮤지션들이 한번 쫄딱 망하면 어떻게 될까 되게 궁금하다. 학교도 좋고, 음악도 빵빵 터지고 그런 사람들에게 실패라는 건 뭘까?

붕작 : 자기만의 실패가 있지 않을까? 누군가에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작은 실패부터 남들이 모르는.

선욱 : 그런게 포지티브하게 바뀌어서 음악으로 승화되었을까?

붕작 : 아니, 그런 말이 아니고. 모르는 거다. 다른 사람은. 이를테면 내가 아는 한 A는 보통의 가정에서 자라 괜찮은 학교를 나와 썩 괜찮은 회사에 들어갔다. 좋은 남자친구도 있다. 좋은 취향도 있다. A에게 다른 B가 물었다. ‘니 인생에도 어두움이라는 게 있어?’라고.

선욱 : 뭐랬나.

붕작 : ‘당연히 있지.’라고 했다. 그래서 그게 뭐냐고 B가 다시 물었다. 그랬더니 A가 ‘그건 너무 어둡고 우울하고 슬픈 일이어서 도저히 말로 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다.’라고 했다. 그런 게 아닐까. 아무도 모른다.

선욱 : 맞다. 그런 것 같다. 근데 내가 보기에 그 뮤지션들은 그렇게 보이는 거다. 나의 인생이란 건 (두 손가락으로 걸어가는 시늉을 하면서)이렇게 걸어가고 있다면 실패는 바로 옆에 도랑처럼 자리하고 있는 것 같다.

붕작 : 평이하게 살아온 편이잖나. (실패의 도랑과) 가까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당신도 빠져본 적은 없지 않나?

선욱 : 그래. 빠진 적은 없다. 하지만 그 형국이란 바다의 심연, 그 바로 옆을 걸어가고 있는 것과도 같다. 한 발짝만 미끄러지면 톡 떨어져버릴 것 같은. 그 끝도 안 보이는 심연이 언제나 바로 옆에 있는 기분. 나는 그 끄트머리를 겨우 걸어가고 있다면 그 뮤지션들은 나보다는 조금 멀리 떨어져서 걷고 있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붕작 : 하지만 그 사람들에게도 저쪽의 심연이 보이지 않을까.

선욱 : 근데 나보다는 더 안전한 곳에 있는 것 같다.

붕작 : 심연은 각자에게 절대적인 것이라고 생각해.

선욱 : 아아...그런가. 모두들 그런 ‘무서움’을 갖고 살겠지.


+ 아니라고는 했지만 사실 음악적인 얘기도 좀 했습니다. 주제는 '여자의 신비로움'이었고요. 인간의 어중간함, 아니 뉴트럴(neutral)함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이야기들이 2편에서 이어집니다. 3편까지 갈 수도...


붕가붕가레코드 대중음악 시리즈 no. 11
어스름하고 선연하게, 당신의 마음과 공명
아침(achime) "Hyperactivity" (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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