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미 음원 공개 기념 인터뷰] '미미의 아버지' 하세가와 요헤이를 만나다

붕가붕가레코드
미미시스터즈의 앨범 '미안하지만... 이건 전설이 될거야'의 디지털 음원이 3월 15일(화)에 각 사이트를 통해 일제히 공개가 되었습니다.
디지털 음원 주요 판매처

싸이월드 
멜론
벅스 
소리바다 
엠넷 
다음 
네이버 
도시락
CD와 함께 150p의 책이 부록으로 제공되는 음반은 3월 18일(금)에 음반 매장을 통해 발매됩니다.
배송 상의 문제로 인해 발매가 21일(월)로 연기되었습니다.
예약구매를 미리 하신 분들께 사과의 말씀드립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미미시스터즈의 첫 앨범 『미안하지만… 이건 전설이 될 거야』의 프로듀서 하세가와 요헤이는 90년대 중반 런던에 있던 당시 지인으로부터 테이프 하나를 받으면서 한국의 음악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때 A면에 들어있던 것이 ‘신중현과 엽전들’이었고 B면에 들어있던 것은 ‘산울림.’ 한국의 음악인이라면 조용필 밖에는 몰랐고 한국이라면 엔카가 대세인 나라라고 생각하던 중에 들은 이 음악들은 그로 하여금 한국 음악을 더 듣고 싶어하게 했고, 이후 무작정 한국으로 향한 그는 홍대 인근을 찾으며 한국의 인디 음악인들과의 교류를 시작했다. 이후 ‘허벅지 밴드’, ‘황신혜 밴드’, ‘위퍼’ 등을 거쳐 ‘뜨거운 감자’에서 6년 동안 활동한 후 현재는 ‘김창완 밴드’의 기타리스트이자 ‘장기하와 얼굴들’의 객원 기타리스트로 활동 중이다.

미미 프로젝트의 음악 감독이자 미미시스터즈의 가장 큰 조력자 중 한 명인 그에게 이번 앨범의 전모에 대해 들어봤다. 프로젝트 특성 상 대부분의 세부사항을 이런저런 컨셉트 아래 감추고 있는 (혹은 감출 수밖에 없는) 이번 앨범에 대한 가장 사실적이고도 정확한 설명을 들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기회 중 하나가 될 것이다.


* 최근 모국인 일본을 강타한 지진의 여파로 하세가와 요헤이님이 걱정이 많으시다고합니다. 트위터(http://twitter.com/#!/lghopper_yohei)나 댓글을 통해 응원의 말씀을 많이 남겨주세요.

더불어 일본의 음악인들을 비롯하여 일본에 계신 분들이 이번 지진 피해를 가능한 원활하게 극복하실 수 있으시기를 붕가붕가레코드가 기원하겠습니다.



일시: 2011년 2월 16일 수요일
장소: 붕가붕가레코드 사무실
진행: 붕작, 너굴
사진: 김기조, 곽원석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자. 이번 미미시스터즈(이하 미미) 앨범은 왜, 어떻게 시작됐는가?

나는 프로듀서를 맡은 거라 어떻게 시작됐는지는......그걸 내가 어떻게 아나? (웃음) 그건 곰사장에게 물어봐야 할 문제다. 붕가붕가레코드에서 연락이 온 거다.

크라잉넛, 서울전자음악단, 로다운30 등 여러 뮤지션이 참여했다. 그것은 하세가와 씨의 의도인지 붕가붕가레코드에서 제안이 들어간 건지 궁금하다.

그건 애초에 내가 만든 컨셉트 때문이다. 처음 컨셉트 그대로 되지는 않았지만. 원래는 미미가 나이도 없고 타임머신을 타고 다니는 설정으로, 어느 시대에서도 미미가 존재해오다가 유명해진 게 2008년 장기하가 데뷔했을 때부터라는 거다. 예를 들어 내가 만든 노래는 60년 대 초쯤에 유행했던 서핑 사운드다. 서울전자음악단의 경우에는 사이키델릭 시절, 69년 70년의 정서를 담은 것이다. 로다운 30은 70년 대 중반 소울 사운드를, 크라잉넛은 96년 딱 인디유행이 시작됐을 때를 재현한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미미가 각 시대의 뮤즈였다는 설정이다.

그렇다. 그런데 그 설정을 가져가기에는 데뷔앨범부터 노래를 너무 잘해야 되고 이런 어긋난 부분이 있지 않을까라는 곰사장의 지적이 있어서 생각해보니 ‘그러네.’ 싶어서 약간의 컨셉트 수정이 있었다. 그래서 고민을 했는데 그러면 여러 음악, 여러 뮤지션과 만나 ‘음악을 배운다’라는, 처음 데뷔하는 가수로서 뭐라 그럴까......초보, 초심을 가지는 컨셉트로 바꾸게 되고, 그렇게 해서 여러 뮤지션과 작업한다는 부분만 가져가게 됐다.

나도 처음 컨셉트만 전해 들었다. 

아무래도 몇 십 년 음악을 했다고 하기엔 좀 딸리는...... (웃음)

트랙마다 성격이 다른 걸로 알고 있다. 좀 자세하게 나눠서 설명해 달라. 일단 미미미미미?

아, <미미미미미미미미>! 미가 여덟 개다. (웃음) 그 제목은 내가 지었다. 이 노래의 경우 내가 먼저 만들었는데, 미미에게 “너네 노래니까 부르기 쉬운 걸로 한 번 해봐라, 멜로디라인 잡아와 봐라.”라고 했더니 (결과물이) 괜찮은 거다. 미미가 만들어 온 게 내가 만든 것보다 훨씬 신나고 좋아서 그걸로 간 거다.

<다이너마이트 소녀> 같은 경우는 김창완 선배님의 곡이다. 옛날에 인희 인화라는 분이 부른, 김창완 선생님께서 프로듀싱한 앨범에 실린 노래다. 락이 안 어울리는 분이 억지로 락을 부르는 느낌이랄까? 내가 김창완 밴드에서 ‘제발 제발’이란 노래를 셀프 리메이크한 적이 있는데 그 노래와 더불어 내가 좋아하는 노래다. 그래서 그 노래가 미미에게 맞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게 됐다.

미미가 놀라지 않았나.

역시 놀랐다. 그걸 어떻게 하냐 했다. 그래서 내가 너희가 사람들을 놀라게 하려면 직접 연주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그 곡을 80년대 후반 90년대 초반 정도에 나오는 얼터너티브 스타일로 편곡을 해서 최대한 치기 쉽게 만들었다. 그렇게 한 몇 달 연습을 했는데...... 했더라고. 재미있게. (웃음) 내가 친 거 하나도 없다. 순수로 미미들이 치는 거다. 드럼은 미미랑 미남미녀의 드러머가 치고. 정말 셋이서 녹음한 것이다. 나는 아무 것도 (녹음연주에 있어서) 도와주지 않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미미랑 미남미녀’는 누구인가?

미미가 활동할 때 함께 할 밴드 이름이다. 기타는 내가, 베이스는 도은호(메리고라운드), 드럼은 유선화(삼청교육대)가 맡았다.

<대답해주오>는 로다운30과 함께 작업한 곡이다. 70년대 소울 풍으로 만든 건데 아무래도 로다운30의 두툼한 사운드와 미미의 그...... 뭐라 그럴까, 어설픈 소울이랄까 그런 게 잘 어우러진 거 같다. 사실 미미의 실력이 연주보다 달리지만 그런 어설픔이 되게 재미있는 부분이라 생각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우주여행>은 옛날에 신중현 선생님께서 바니걸스라는, 미미의 선배 되시는 분들에게 준 곡으로 ‘미미가 당시의 노래를 커버한다면, 이 곡이어야 한다!‘ 라는 생각이 딱 들었다. 이 노래의 재미있는 부분은 당시에 에코기술이 없어서 모든 에코가 입으로 낸 소리라는 거다. 그러니까 ‘나~나아~나아~ 한다고오~고오~고오~’ 이런 식으로. (웃음) 이 곡에 있어서는 당연히 서울전자음악단과 함께 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DNA라는 게 있는 것이고 연주도 사이키델릭하게 잘 하는 팀이니까. 한 곡이 16분이 넘어간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정말인가? 난 들을 때 전혀 그렇게 안 느껴졌다. 

16분 맞다.

(너굴) 한국의 대중음악사를 다시 쓰는 거다.

일단은 새벽 3시에 먼저 나오겠다. (웃음)

크라잉넛의 <미미>라는 노래는 다른 노래들과 다른 부분이 미미에게 바치는 노래라는 점이다. 점이 다르다. ‘괜찮다. 언젠가 괜찮아질 거야’ 이런 건데. 이것도 재미있게 했다. 사실 크라잉넛을 어떻게 크라잉넛이 아닌 것처럼 할까를 고민했지만 어떻게 해도 크라잉넛은 크라잉넛이더라. 나름 디스코 풍으로 해봤는데 크라잉넛이 많이 고생했다. 지금까지 해왔던 거랑 많이 다르니까. 하지만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이번 앨범을 만들며 내 머릿속에는 어떤 컨셉트가 있었냐 하면 ‘이때까지 나왔던 것들과 전혀 다른 것을 하자.’였다. 이를테면 <우주여행>같은 경우는 16분짜리다. 요즘 세상에 누가 16분짜리 노래를 내나. (웃음) <미미미미미미미미>는 서핑사운드를 한국에서 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는 점, <대답해주오>는 소울인데 어설픈 소울인 거다. 알지 않나, 요새 소울 한다 했을 때 워워워 소리 높게 올라가고, 그런 거 말고, 어설픈 소울. (웃음) <미미>의 디스코는 크라잉넛이 해왔던 게 아니었으니 재미있는 거고, <다이너마이트 소녀>는 말없는 미미가 연주한다는 게 재미있는 거다. 초아마추어리즘이랄까? 배우고 두 달 만에 연주하는 거니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

와아- 그전까지 미미는 악기를 다뤄본 적이 없었는가.

둘 다 기타를 칠 줄은 안다. 그렇지만 합주를 해본 적은 없다. 이를테면 어떤 곡을 배워서 연주를 하는 정도지, 드럼에 맞춰서 친다 같은 게 안 되는 실력이었다. 그래서 처음에 합주했을 때 정말 중학생들이 모여서 드럼 치는 거 보면서 하는 듯한, 마치 내가 처음 시작하던 그때를 생각나게 해서 뿌듯했다. 이건 정말 잘 할 수 있겠는데? 라는 느낌이었다.

이렇게 다섯 곡 안에 내 나름의 아나키즘이 들어가 있다. ‘지금 이런 식으로 하는 사람이 없다, 다른 사람들과 같은 식으로 하면 재미없다.’ 라는 생각을 계속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내껀데>라는 보너스 트랙이 있다.

아 그거! 귀에 착착 감기는!

맞다. 그거. (웃음) 그 곡은 미미가 만든 노래다. 그걸 들었을 때 꼭 수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것도 아나키즘이 아닌가, ‘지금 나오는 음반에 왜 뽕짝이 들어가냐.’라는 부분에서. 그리고 이 곡은 소리도 특이한 점이 있다. 보통 뽕짝을 트럭기사들이 테이프로 듣지 않나. 그래서 그 느낌을 살리기 위해 테이프로 녹음한 뒤 다시 옮기는 작업을 했다. 원래 녹음소스를 일본에 가서 작업을 하면서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런 고민이 있었는데 테이프에서 듣는 거니까 다시 테이프로 옮기자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디지털에서 먼지에 쌓여있는 테이프덱으로 연결해서 녹음한 거다. 그렇게 한 뒤 테이프에서 다시 컴퓨터로 옮겨 믹싱을 했다.

그런 방법이 있나.

처음에는 정말 심한 게 테이프를 틀어놓고 여기 스피커에 마이크를 대고 녹음하려고 했다. 한번 해봤는데 ‘이거 너무 심하지 않냐. 아무리 실험적인 걸 한다고 해도.’ 라는 의견이 있었다. 그래도 한번 해봤는데 녹음 막바지에 전화가 왔다. 아! 이거 다 끝나가는데 왜 지금 전화가 오지 그러면서 아무래도 아닌가 보다라고 생각했다. 재미있는 건 그 상대가 쿠루리(くるり, Quruli)였다.

오! 진짜?

으앜! 하는 소리, 엔지니어 나카무라씨가 모시모시- 하는 소리랑 다 음원으로 남아있다. 쿠루리가 방해를 한 셈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냥 내면 안 되나? (웃음)

그걸 넣으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너무 장난치는 거 같아서 포기했다.

아무튼 그렇게 해서 마지막에 테이프를 돌리고 스톱시키는 소리까지 실제로 한 것이다. 샘플링 같은 게 아니다. 그러니까 제대로 뽕짝 같은 소리가 나는 것이고, 앞에 나오는 시장 소리는 내가 남대문 가서 녹음해 온 것이다.

내가 녹음공정에 대해서 잘 몰라 다시 확인 차 묻겠다. 테이프로 녹음을 했다는 게 연주를 하는 걸 카세트를 틀어놓고 녹음을 했다는 것인가?

아니다. 처음엔 디지털로 녹음을 했다. 디지털이 소리는 확실히 좋다. 하지만 뽕짝으로서의 리얼리티가 떨어진다. 택시 기사들이 테이프로 듣는 게 뽕짝인데 바로 그 소리를 원했다. 그래서 디지털로 녹음된 음원을 틀어놓고 테이프로 녹음을 해본 건데 진짜 그 소리가 재현이 된 거다.

근데 여기 보면 8개 트랙이 있는데 맞나.

노래는 여섯 개다.

그러면 1번이 목 푸는 것 같은 것이고 3번이 4번을 위한 연습 같다. 연결되는 것 같은데?

맞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전까지는 음악적인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했는데 이번에는 미미와 만나서 어떤 방식으로 작업을 했는지 듣고 싶다.

아무래도 미미가 음악을 해왔던 친구들이 아니어서 거의 뭐 처음부터 하는 거, 이런 거다, 저런 거다라는 식으로 가르치면서 했다. 나도 힘들었던 게 뭐냐 하면 만약에 음악 하는 친구라면 대충 “이렇게 하자.” 하면 “그래, 알았어요.” 하고 하면 끝나는 건데 그거를 “알았어요.”가 나올 때까지 설명하는 게 너무 힘들었다.

우리는 당연한 듯이 해왔는데 하나도 모르니까 ‘아니 이거는 이런 거니까 이렇게 하고오~!’가 되는 거다. 그러면 그쪽에서는 ‘하지만 PD님 이런 건 이러해서 아니지 않아요?’라고 반문하고 ‘그건 아니지 않고! 이렇게 하면 그게 돼!’라고. 하아- 힘들었다. (웃음) 그런 부딪히는 과정을 통해 지금까지 내가 편하게 해왔다는 걸 깨달았다. (웃음) “너 알아서 해봐!” 가 얼마나 편한 것인지.

이 친구들은 당연히 알아서 할 수 없고 데모를 정말 미세하게 만들어서 들려줘야 감을 잡는데 그 데모를 만드는 게 너무 싫었다. 귀찮고, 데모 만들면 그대로 해야 되고 데모 때문에 그대로 따라 해야 된다는 생각에 유연하지 않게 되는 등...... 휴- 그게 가장 힘들었던 부분이다.

지금 듣고 있자니 이건 마치 공부를 그럭저럭 하던 애들에게 각 과목별 최고의 과외선생을 붙여 3-4개월 만에 서울대 보내기 같은 느낌이 든다. (웃음) 이를테면 아까 말한 것처럼 잘하는 애들은 그 문제에는 이 공식이야 라고 말해주면 되지만 공부를 안 하던 애들은 수학의 공식은커녕 기호자체를 모르니 설명해 줘야 하고......

근데 뭐 사실 이건 때리면서 하는 게 아니지 않나. (웃음) 하지만 미미가 정말 열심히 했고 금방금방 따라와서 놀라웠다. 그러나 어떤 부분은 정말 따라와주지 않아서 화낸 적도 있다. 나 좀 피디로서 존중해주면 안되냐고, 말 좀 들어달라고. 그래도 점점 할수록 ‘이래서 피디님이 우리에게 이렇게 하라고 했구나!’를 느꼈었던 것 같다. 그때부터 자세가 달라졌다.

전에 다른 앨범 프로듀싱 한 적이 있는가

혼자서는 없다. 영화음악 같은 거나 ‘뜨거운 감자’같은 경우에는 자기들이 곡 만들고 편곡하는 거라 프로듀스라기보다 같이 작업하는 거라고 보면 되고, 다른 사람 노래를 편곡한 적은 있지만 앨범 전체를 혼자서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렇다면 다른 작업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일 것이다. 어떤 게 다른가?

정말 내 이름을 걸고 하겠다는 게 강했다. 그전에는 사실 밴드도 그렇고 영화음악도 그렇고 양보해야 되는 부분이 많았는데 이번에는 ‘이 부분만큼은 양보할 수 없다!’가 있었다. 그게 좀 많이 다른 부분이 아닐까? 전에는 누군가 같이 참여하는 분들이 ‘하세가와 이 부분은 이렇게 하는 게 맞지 않을까?’했을 때 ‘아 그것도 맞는 것 같군요.’라고 했지만 이번에는, 특히 사운드 면에 있어서 고집이 있었다. 그래서 처음부터 ‘믹싱과 마스터링은 나에게 맡겨달라. 나는 꼭 일본에서 같이 작업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 라고 얘기했다. 이걸 맡겨주지 않으면 내가 프로듀서를 하는 의미가 없다라고 까지 했다.

일본에서 작업하는 게 한국과는 환경이 크게 다른가?

많이 다르다. 왜냐면 그게 악기나 장비 때문이 아니라 사람의 마인드가 다르다. 내가 주로 작업을 함께 하는 분은 실험적인 부분이 강한데 그분은 옛날부터 내가 좋아하기도 했고 일본 뮤직매거진에서 2000년대 통틀어 통 털어 1위로 꼽힌 분이다.

어떤 사람인가.

나카무라 소이치로. 그분이 믹싱이나 마스터링을 맡아 작업한 앨범들도 좋고, 플레이어로서도 존경한다. 아무튼 음악을 잘 알고 실험정신이 강해서 좋아한다. 그 전에 김창완 밴드의 앨범작업을 같이 해보기도 했고, 정말 뭔가 만들 줄 아시는 분이다. 아티스트다. 그래서 나는 꼭 그분과의 작업을 절대로 양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비행기표랄까, 그런 것은 신경 쓰지 않았다. 아무리 (개인적으로) 적자가 나더라도 양질의 퀄리티를 만들어내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비행기표를 자부담으로 했다는 것 인가. 열의가 대단하다.

그렇다. 한국의 앨범들을 들어보면 뭐랄까 입체감이 없고 납작하게 들린다. 튀는 게 없다. 노래도 그렇고 드럼도, 베이스도...... 그냥 일자로 주우욱- 하지만 나카무라 씨의 경우에는 입체적으로 튀어나오는 느낌이 있다. 그것을 원했다. 그리고 과도한 시도가 좋다. 이를테면 드럼을 치면 빡! 빡! 하고 튀어나오는 소리가 되는 거다. 그래서 <다이너마이트소녀>가 나왔을 때 미미가 말하길 우리가 연주한 것 같지 않다고 했을 정도였다.

그러면 라이브에서는 다를 수 있겠다.

그래서 지금 연습 많이 하고 있다. (웃음) 나도 걱정된다. 앨범만큼 나올까 하고. 하지만 일단 앨범은 작품이니까, 잘 만들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나카무라 소이치로 씨는 미미의 노래에 대해 어떻게 평가했는가?

<내껀데>가 아주 좋다고 한다. 나카무라 씨는 여러 밴드들과 동시에 작업을 하는데 믹싱을 하고 다음날 만나면 ‘그 앨범을 다른 밴드들에게 들려줬는데 <내껀데>를 그렇게 좋아하더라.’라고, 제일 의견이 많은 게 <내껀데>였다.

정말 귀에 착착 붙더라.

사람들이 계속 머릿속에서 맴돈다고 하더라.

그쪽 분들은 가사의 뜻을 모를 텐데?

그러게 말이다. 근데 <내껀데>가 일본에서 뻗어버렸다라는 의미의 단어와 비슷한 발음이고 한편 네꼬(고양이)와도 발음이 비슷해서 강한 인상을 주는 것 같기도 하다.

(너굴) 나카무라 씨는 마스터링을 끝내고 본인의 욕심과 기대감에 비추어 몇 점 정도를 주었는가?

나카무라 씨는 원체 오오오!!! 이런 스타일 아니다. 다만 작업이 끝났을 때 ‘괜찮지 않나? 이 정도면 괜찮지 않냐?’ 라고 했다. 그래서 ‘괜찮죠.’라고 했더니 ‘그럼 됐네.’라고. (웃음) 그런데 다음날 또 전화가 와서 집에서 들어봤냐고 묻고는 ‘좋지?!’라고 하시더라.

문득 하세가와 씨도 그렇고 다른 밴드들도 그렇고 이 미미 앨범에 작업하신 분들의 면면을 보면서 미미가 굉장히 사랑 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세가와 씨는 붕가붕가레코드에서 제의가 들어와서 했다고 했지만 그렇게만 설명되지는 않는 것 같다. 작업에 참여한 밴드들도 거의 무보수에 가깝다는데. 뭔가 이 작업을 함께 하고 싶게 만든 미미만의 특별한 게 있는 것 같다.

그건 정말 미미의 사생활 때문이다. 그분들이 미미에게 해주고 싶을 만큼 미미가 잘 해드렸다는 거다. 나도 그렇고. 미미라는 강한 컨셉트가 있지만 평소에는 굉장히 사람에게 잘 한다. 선배 뮤지션 이런 걸 떠나 사람으로서 이뻐할만한 구석을 많이 가지고 있는 거다. 그래서 이런 앨범이 있는데 라고 했을 때 다들 오케이를 한 것이 아닐까. 근데 나도 정말 이 부분만큼은 이래도 될까 싶었던 게 있었다. 신중현 선생님과 김창완 선생님이 나에게도 한국에 오게 되는 이유가 되는 양대산맥이신데 설마 이렇게까지 될까? 라는 거를 생각하면서 한번 말씀 드려본 것이다. 신중현 선생님과도 하면 좋겠고, 김창완 선생님과도 하면 좋겠고...... 하는.

사실 처음 데뷔하는 뮤지션으로서 그것까지 해도 되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는데 정말 모르겠다. 아무리 생각해도 미미라는 사람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다. 운도 좋고, 사람도 좋고 뭔가 이건 타이밍이 딱딱딱 맞게 진행되는 느낌이었다. 그게 어떤 힘인지 나도 모르겠다. 말하자면 미미의 힘이 아닐까? 사람에게도 잘하고 의외로 적이 없다…… 랄까? 사실은. (웃음)



사용자 삽입 이미지


결국 사람이란 말로 들린다.

그렇다.

이건 실을지 안 실을지 모르겠지만 궁금해서 물어보고 싶다. ‘한국 속담에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 라고 한다. 이게 맞나? (웃음) 특별히 사랑하고 정이 가는 트랙이 있는가?

<다이너마이트 소녀>다. 이건 맨 처음에 편곡이 끝났던 곡이고 제일 빨리 연습을 시작한 노래였고 통 틀어서 가장 큰 성장을 보여준 곡이었다. 처음에는 말도 못하게 안 맞았는데 내가 김창완밴드나 장기하와 얼굴들 합주를 하고 며칠 후 돌아와 보면 어떻게 늘었지? 싶게 발전해 있는 거다. 녹음이 끝났을 때 그건 마치 산꼭대기에 다다른 느낌이었다. ‘아아 여기다!’ 라는 확실한 느낌.

미미가 본격적으로 합주를 시작한 게 언제인가?

작년 10월이라고 보면 된다. 거의 매일이었다.

(너굴) 인터뷰 내내 미미와 앨범에 대해 말씀하시는 하세가와 씨의 표정이 마치 나를 보는 아버지의 표정과 같은 느낌이다.

(웃음) 나도 뭐 사실 선배가 될지는 몰랐다. 음악은 배워가야 할 것이라고만 생각했지. 예를 들면 음악을 가르치는 그런 사람들 많지만 나는 그런 걸 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음악은 평생 배우면서 가는 거지, 자기가 배운 만큼 누구에겐가 가르쳐줄 수 있는 것이냐.’ 라고 생각해왔기 때문에 이번에 나도 나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게 됐다. ‘이렇게 하면 좋지- 저렇게 하면 좋지.’ 하면서 ‘아, 나도 선배가 될 수 있는 경우가 있구나, 가르쳐줄 수 있는 무언가가 있구나.’라고. 의외였다.

어떻게 보면 질문의 순서가 굉장히 바뀌었을 수도 있지만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하세가와 씨에 대해 궁금해졌다. 어떻게 왜 한국에 왔는지, 어떻게 왜 지금까지 있는지도 궁금하다. 이제야. (웃음)

처음에는 세계 각국의 사이키델릭 음악을 들었었고 일본에서 몇 개의 밴드를 하고 있었다. 1995년에 곱창전골이라는 6-70년대 한국 락을 전문으로 카피하는 밴드도 했었다. 그것 때문에 밴드 리더가 한국에 오게 됐다. 그때 당시 나는 런던에 있었다. 우리가 나중에 일본에서 만났을 때 내가 ‘영국이야말로 음악 하기 최고의 나라다! 영국으로 가자!’ 라고 말했는데 이 친구가 나에게 테이프 하나를 줬다. ‘하세가와가 정말 좋아할 거야.’라면서. 그래서 들어봤는데 A면에 ‘신중현과 엽전들’이 들어있었고 B면에 ‘산울림’이 들어있었던 거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아아~!!! (동시다발탄성)

완전히 엑기스가 장난 아니지 않은가? 그래서 확 간 거다. 조용필씨 말고는 아무 정보가 없는, 엔카가 대세인 나라라고 생각했던 나라였는데, 그 테이프를 듣고 더 듣고 싶다라고 생각하게 됐다. 하지만 그때는 인터넷도 없고 한류붐 이런 것도 없고. 그렇다면 (한국으로) 가야 되지 않겠냐 해서 오게 된 거다.

참 심플하다. (웃음)

그렇다. 처음엔 지하철 2호선 정거장마다 내려서 레코드가게에 갔다. 어디서 어떻게 찾아야 되는지 모르니까. 동네마다 뒤져서 남아있는 재고를 샀다. 공연장도 어떤 인디씬이 있다라는 소문을 듣고 홍대 와서 드럭에 갔더니 크라잉넛, 노브레인이 있었고 블루 데빌에 갔더니 자우림이 있었다. ‘너무 재미있다! 자주 와야겠다.’ 라고 생각하게 됐다. 그 당시 비자가 2주일밖에 머무를 수 없는 거여서 일본에 돌아가 3일 지내고 다시 나오고를 반복했다.

대단하다!!

그랬더니 이상한 일본사람이 온다 라는 얘기가 나돌게 됐다. (웃음) 어느 공연에 가도 그 일본인이 있다라고. 그러다가 어느 날은 사람들이 말을 걸어줬다. “유 드링크 투게더?” 이러면서. 나는 네- 이러고. 그렇게 사람들을 알게 돼서 허벅지 밴드와 황신혜 밴드를 하게 됐다. 위퍼도 잠깐 했었고 그 다음에 뜨거운 감자를 6년 동안 했다.

김창완 밴드에는 어떻게 합류하게 됐나.

그게 산울림이 8년 만에 공연을 하는데 기타리스트를 구하는 중에 나에게 제의를 해온 거였다. 나는 그 밴드 때문에 한국에 오게 된 것과 마찬가지이니 깜짝 놀랐다.

왜 들어왔을까? 그 제의가. (웃음)

나도 모르겠다. (웃음) 다만 그 당시에 그분들이 산울림을 가장 잘 치는 기타리스트를 생각하다가 주위에서 얘기도 해주고 해서 그렇게 된 게 아닐까? 멤버 말고 주위 분들의 반대도 있었다고 한다. 그래도 산울림은 음악을 오래 해왔고, 한국음악의 자존심이라 할 수 있는 밴드인데 일본인이 들어와서야 쓰겠느냐 라는. 하지만 산울림 멤버들은 그게 도대체 뭐가 문제나라고 하셨다고 한다. 2005년 때부터 그렇게 산울림을 시작하고 김창완 밴드로 이어진 것이다.

하세가와 씨, 정말 매력적인 사람이다.

그런가? (웃음)


관련 글

* 미안하지만... 이건 아마 후기일 거야 [미미시스터즈]
* [예약판매] 미미시스터즈 첫 앨범 '미안하지만... 이건 전설이 될 거야'

음반 예약 판매처

YES24 - 예약 기간 구매한 고객을 대상으로 추첨을 통해 '미미 방문 배송' 이벤트
향뮤직 - 미미시스터즈 개인 소장품 증정 및 붕가붕가레코드 1+1 이벤트
알라딘 - 붕가붕가레코드 1+1 이벤트
인터넷 교보문고
인터파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