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작의 관찰노트] 36.5ºc 의 최고은 인터뷰

붕작
사람을 좋아하게 된다. 사소한 것들이 궁금해진다. 물어볼 수도 있고, 끝끝내 물어보지 못하는 것들도 있다. 물어보지 않고 알아낼 수도 있겠다. 그렇게 모은 것들을 토대로 나는 그(그녀)를 흉내 낸다. 누군가 당신이 자주 가는 까페에 유난스레 들락거린거나, 트위터에 언급한 책을 찾아 읽는다거나, 흘리듯 말해준 음악들을 찾아듣고 있거나, 당신이 좋아하는 외진 길을 걷고 있다면 그건 아마도.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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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2시 40분경 사둔 지 두 달이 지난 된장을 꺼내어 포장을 뜯고 두부를 썰고 양파를 썬다. 나는 최고은과의 인터뷰를 정리중이었다. 총 9페이지가 넘어가는 분량이었으니 당연히 배가 고파왔다.  

지난주에 만나 최고은과 나는 음악 이야기만큼 아침밥과 된장국, 가지전 그리고 건강에 대해 이야기했다. 건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녀는 아침에 일어나 9곡밥에 된장국을 기본으로 한 가지 요리를 꼭 해서 먹는다고 말했는데 그 표정이 너무나 진지하고 진심이어서 나는 소리내어 웃어버렸다. 그리고는 인터뷰를 정리하다 말고 나는 된장국을 끓여 먹는 것이다.

취향이라는 것, 습관이라는 것, 호불호, 이런 것들의 많은 부분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서 떨어져 나온 것 혹은 내가 훔쳐낸 것들로 이루어진 것들이 아닐까.

버려진 집 같은 무질서한 방의 한 가운데서 나로 하여금 된장국에 넣을 두부를 썰게 한 최고은의 힘, 그것은 그녀의 음악이기도 하고, 그녀 자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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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2010년 10월 28일 늦은 6시 30분
장소: 합정역 근처 anthracite
진행/정리: 붕작
사진: 붕작의 아이폰 4G + 기존 자료
동영상 삽입: 권선욱

*당일 똑딱이를 대동하고 사진을 찍었으나 이후 파일을 품은 채 똑딱이가 사라져 사진이 남아있지 않게 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바람이 차고 달이 선명한 저녁, 36. 5°의 최고은을 만났다]


사실 약속장소였던 앤트러사이트 입구에서 저 사람이 최고은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잠시 했었다. 하지만 내 머릿속 그녀와는 달라서 전화를 했다. 그런데 입구에 서 있는 그 분이 전화를 받았다. 그렇게 겸연쩍게 최고은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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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보니 생각보다 훨씬 어리다. 사진을 보기는 했지만 노래로 이미지를 그리고 있어서 아무리 낮게 잡아도 30대 초반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미안하다.  

괜찮다. 예전에 참여한 앨범이 있었는데 나중에 어떤 관계자분을 만났을 때 “최고은입니다.”라고 하니 그 최고은이 맞냐고 물었다. 자기는 40대인 줄 알았다고. (웃음)

노래를 들으면서 경력이 오래된 분일 거라고 생각했다. 나름 뒷조사를 한다고 했는데 도무지 검색에 걸리지를 않더라.

노래를 하겠다고 한 건 이제 2년 정도 됐다. 그 전에 학교 동아리를 하긴 했었다.

 

[가사가 온통 영어다!]

미안하게도 노래를 처음 듣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온통 영어다!’였다.(웃음) 영어로 가사를 쓰는 이유가 따로 있는가.  

현재로서는 목소리를 다루는 데 있어 영어가사가 나에게 적합한 느낌이다. 가사전달을 중요시하는데 한국어로 노래를 하면 그게 자칫 내 목소리와 이질감이 느껴질 때가 있다. 계속 공부중이다. 사실 Eric's song이 시발점이다. 2년 반쯤 됐을라나? 친구에게 선물로 주려고 한 것이었는데 그 친구가 외국인이어서 영어를 선택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전에 습작처럼 한국어로 노래를 불렀던 것보다 표현할 때 훨씬 풍부한 느낌이 들었다. 한국말로 부를 때 사람들이 생경하게 느끼는 경우가 많았다. 오히려 더 늙은 목소리, 정말로 40대 여자분이 노래를 부르는 것 같다고. 



알아들을 수 있는 단어는 별로 없어서 가사를 찾아서 봤는데 회화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굉장히 느리게 돌아가는 옛날 영화같기도 하고. 한편 CD 케이스도 그렇고 원래 그림을 그리시는 분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다. 프랑스 문화와 여성학을 연계 전공했다. CD케이스는 바이올린 연주해주시는 분이 집에 놀러오셨다가 케이스 때문에 고민하는 나를 보고 나무판으로 하는 건 어떤가하고 제안해 주셨고, 원안으로 들어가기로 한 그림을 파서 주신 것이다.  

반응 좋다고 들었다. 교보나 영풍에서 다 나갔다는 얘기도 들리고.  

글쎄 난 아직 들려오는 바가 별로 없다.


[갑작스런 까르푸황]

최고은과 CD가 얼마나 팔리고 있는가에 대해서 막 이야기하려던 찰나 낯선 남자가 테이블 옆으로 와서 섰다. 최고은은 불나방스타소세지클럽의 멤버 까르푸 황이라고 그를 소개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까르푸황 @ 2010 지산 벨리 록 페스티벌

아...............................................................

나는 겨우 목인사만 하고 말았고 그녀와 대화를 마친 까르푸 황이라는 분이 나간 뒤에야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놀랐다. 까르푸 황. 그러니까...너무 정상적이라서 못 알아봤다. 아 이 말이 이상한가. 지난번에 지산에서 봤을 때도 까르푸가 제일 안쓰러웠다. 안에 아무것도 안 입고 멜빵바지만 걸치고 농약모자인가를 쓰고 있었는데 측은지심이 들 정도였다. 그런데 옷을 다 입으신 걸 보니 정말...준수하다. 진짜 깜짝 놀랐다. 너무 놀라서 미안할 정도다.  

나도 조까를로스가 썬글라스 벗었을 때 못 알아봤었다. 괜찮다.

난 영원히 못 알아볼 것 같다. 그런데 까르푸 황과는 어떤 관계인가.

이번 EP의 프로듀서다. 오로라 프로젝트라는 것을 했었는데 함께 참여했던 팀 중에 한 명이었다. 그때 알게 돼서 녹음할 때도 도와주고.



[이성을 꼬시거나 스스로를 치료하거나 혹은 멋있어 보이고 싶거나]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어떻게 음악을 시작했는가

학교에서 하드코어밴드 보컬이었다. 그때 목소리는 지금과는 전혀 다르다. 지금 목소리를 듣는 사람들이 잘 안 믿는데 그땐 엑실리아 같은 하드코어밴드 여자 보컬 카피하고 공연하고 그랬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Exilia

재밌겠다. 자료 찾아보고 싶다

없다. (웃음)

그런데 어쩌다 이 길로?

아, 첫 사랑을 되게 늦게 시작했다. 아쉬움이 많이 남는 헤어짐이었다. 힘들어서 1년 간 휴학을 했었다. 그 기간 동안 기타로 치유를 했었던 것 같다. 할 일이 없으니까. 눈 뜨면 너무 먹먹하고 새벽에 잠도 안 오고 길 가다 보는 모든 것들에 의미가 있어 보이고. ‘이러면 안 되겠다’ 라고 생각하고 기타를 시작했다.

그때 영어선생님 에릭을 만나고 다른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에릭이 떠날 때 노래를 만들어 주게 된 거다. 좋아했던 남자라던가 그런 건 아니었다. 그런데 주변에서 노래를 녹음해서 간직하고 있으면 좋겠다고 하는 거다. 근데 나는 '에릭 송(Eric's Song)'이 촌스럽다고 생각했다. 가사도 너무 유치하지는 않나? 했는데 주변에서 음악을 계속 해도 되겠다고 말씀들을 해 주셔서 그 힘으로 노래를 이것 저것 만들게 되고 그러다가 이렇게 됐다.

내가 아는 친구가 비슷한 이유로 음악을 시작했다. 사랑을 앓고 나서 그걸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혼자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고 하더라.  

흐흐흐. 맞다. 그렇게 시작하는 것 같다. 이성을 꼬시거나 스스로 치유하고 싶거나, 멋있어 보이고 싶거나.
 

[조금씩 더디게 간다]

(동감의 웃음) 그럼 그때 기타를 처음 배우기 시작한 것인가.

그렇다. 한 3년쯤 기타를 친 것 같다. 3년 반? 학원을 다니며 배운 게 아니고 혼자 했다. 그래서 잘 하는 건 아닌데도 열심히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그렇게 더디게, 더디게 하다보니 3년 정도가 됐다.  

난 악기를 못 다루겠다. 끈기가 없어서. 그 처음에 참아내야 하는 시간을 못 견뎌한다. 그래서 악기를 다루는 사람들을 보면 매우 부럽다. 하지만 나도 나에게 맞는 마법의 악기를 만났다. 크로마 하프라고. 1980년대 전국의 문화센터를 강타한 악기인데 타자기처럼 자판같은 게 있는데 F코드를 잡고 싶으면 그냥 그걸 누르고 다른 손으로 드르릉 하면 되는 것이다.

와아- 신기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마법의 악기, 크로마 하프

그런데 그걸 다루면서 뮤지션의 심정이랄까. 그런 것을 아주 조금 알게 됐다. 이게 피크로 치는 것과 손톱으로 치는 게 다르고, 나중에 우연히 알았는데 살(손가락 끝)로 치는 게 소리가 또 다르더라. 소리가 훨씬 좋아서 손가락 끝으로 치다보니 물집이 잡히는데도 그 소리를 들어버린 이상 다시 피크나 손톱 스트로크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그때까지는 기타나 베이스 치는 사람들이 왜 물집까지 잡혀가며 연습을 하는 지 알 수 없었다. 그냥 피크로 치면 안 되나? 였던 거다. 그래서 악기 무지랭이인 나도 더 좋은 소리를 만났을 때 이런 욕심이 아는데 음악하는 사람들은 더하겠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부류가 있는데 나처럼 별 생각 없이 쭉 하는 사람도 있다. 보통 대개는 하나 하면 다른 것도 해보고 싶어하는데 나는...나도 하긴 해야되는데...하하하


이 후 크로마하프에 대한 잡설이 약 10분 동안 진행됐다. 최고은과 나는 왠지 함께 노를 잡고 힘껏 저어 산으로 가고 있는 것 같았지만 꽤나 즐거워서, 그냥 계속 노질을 하기로 했다. ‘산으로 가도 상관없어,’라는 타입의 최고은이 좋아지기 시작.



[당신의 Growing process]

Growing process가 궁금하다. 가장 마음에 드는 제목이었다. 어떤 노래인가?

이건 거의 EP에 실리지 못할 뻔 했다. 모든 에너지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던 노래다. 내용은 한 소녀가 사전적인 의미에서의 어른이 된다는 것을 모른 채로 되버린 것에 대한 얘기다. 초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 들어갈 때쯤 사람들이 ‘터지는 때’가 있지 않나. 나 같은 경우에는 대학교 때였다. 대학교도 의미 없이 다녔는데...



나도나도.

졸업할 때쯤 그런 의문들이 터졌다. 왜 직장을 잡아야 하는지, 뭘 위해 살고 있는지. 방식이 잘못 된 게 아닐까. 그냥 나는 사람들이 하자는 대로 살아왔는데 지금 와서 보니 이걸 앞으로 계속 할만한 재미도, 의미도 없는 거다. 왜 해야 될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만든 노래이다. 


[내 일상이 내 존재를 채우는 것이다]

지금은 어떤가, 잘 그로잉하고 있는가?

사실 Growing process 다음에 나온 노래가 Doubtless wait me다. 취직을 하지 않고 지낸다는 것은 내가 부지런하지 않으면 해야 될 일이 없는 거나 똑같다. 그것 때문에 회의감도 들고. 내년의 내 모습도 안 보이고, 5년 뒤의 내 모습도 안 보여서 엄청나게 우울감에 빠졌었다. 누가 내 손금을 봐줬는데 짧으면 2년 길면 10년 남았다고 운동을 열심히 하라더라. 오래 살고 싶으면 노래를 하지 말라고. 노래를 부를수록 생명의 에너지가 소진된다고. 그런 이상한 말도 듣고 해서 올 초에 굉장히 우울했었다. 자신감도 없어지고.

이런 일상적인 것들 때문에 내 자신이 작아지는 것 같고 의미도 없는 것 같고 허무하고 한데 문득 이게 내가 꾸려가고 있는 삶인데, 다르게 생각하면 그것이 내 존재감을 채워줄 수 있는 게 아닐까.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잘 살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EP란 걸 내게 되고 계속 할 일들은 조금씩 생기는데. 잘 살고 있을까? 정말 잘 모르겠다.  

음.............보기에는 좋아 보인다. 얼굴도 반짝반짝하고.  

하하하!(장군웃음) 어제 아는 분이 ‘고은씨는 하루에 몇 가지의 일을 하냐.’고 물어봐서 ‘글쎄요, 저는 일어나서 밥을 챙겨먹는 것부터 시작해요.’라고 했더니 ‘그건 하는 일이 아니잖아.’라고 하셨다. ‘어 그렇다면 저는 하는 일이 하나도 없어요. 일주일에 일적으로 해야 되는 일이 있으면 스트레스 받아요.’라고 했더니 ‘그러면 어떻게 살아.’라고 했다. ‘그러게요. 저 어떻게 살죠?’ 라고 했다.(웃음)

아이고...학교는 어떻게 다녔나.

그러게 말이다. 어떻게 다녔을까.  

최고은 자신의 growing process가 궁금하다.

초중고 모두 광주에서 자랐다. 원래 국악을 했었다. 판소리를 했는데 몸이 너무 안 좋아졌다. 손가락 마디마디가 퉁퉁 불었다. 국악은 노래를 할 때 온 몸을 쓴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악을 지르고 해야 하는데 ‘이걸 내가 평생 해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이건 취미의 영역으로 하자, 그냥 공부를 하는 게 낫겠다 싶어서 재수해서 학교를 들어간 것이다. 그런데 결국 음악으로 돌아왔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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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이 러버]

공부, 혹은 음악만 했던 건가?

많이 활발했다. 키도 크고 덩치도 크고 해서 체육도 잘하고. 전체 학생에서 체육으로 9등이었다. 특 A급이었다. 체육시간엔 선생님이 파트너로 데려 갈 정도였다. 그리고 농구를 하면 애들이 무서워서 잘 덤비지 못할 정도였다.  

운동인으로서 반갑다. 요새도 운동을 하는가?

얼마 전에 음악하는 친구들과 족구를 했다. 너무 오랜만이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는 운동을 거의 하지 않았다. 대신 걸어 다니는 걸 좋아해서 작년에는 꽤 걸어 다녔다. 약 한 달동안 티벳을 걸었다. 올 봄에도 한 달 정도 혼자서 일본에서 걷다 왔다. 건강을 중요시한다. 마사이 신발을 신었다.

(빅웃음) 마사이?

그렇다. 마사이. 그런데 통증이 있어서 병원에 갔더니 의사 선생님이 운동을 너무 많이 한 것 같다고.(웃음) 근육을 너무 많이 써서 힘줄들이 경직이 됐으니 그 신발 신지 말라고 했다. 그래서 지금은 단화를 신는다. 마사이 신발 신으면 뱃살로 빠지고 좋은데.

건강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 아침에 일어나서 된장국 끓이고 가지전도 부쳐 먹는다. 제육볶음이나 그런 음식을 꼭 한 가지씩 해 먹고, 밥도 오곡, 아니 구곡밥으로 먹는다. 물도 끓여서 마시고. 부모님께서 건강식을 좋아하셔서 옆에 있다 보니 버릇이 돼서 인스턴트를 먹으면 죄짓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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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건강한 음식을 좋아한다. 고은씨와 다른 점은 게으르다는 것이다. 혼자 사는 주제에 인스턴트는 싫어하고, 해 먹기는 귀찮고. 결국은...

김치밖에 없을 거다. 김이랑. 흐흐흐

흐흐흐흐. 맞다. 그것만 먹는다. 난 아침이라서 밥맛이 없다거나 그런 게 없다. 눈 뜨자마자 밥이 있으면 잘 먹는다. 문제는 밥이 없어서 일어날 수 없다는 데 있다.

 
[음악을 하면서 나만의 공간을 유지할 수 있는 길을 찾고 싶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건강한 삶으로 유명하다. 농경민족적인 삶을 사는 사람인데 고은씨를 보니 무라카미의 뮤지션 버전인 것 같다.  

건강한 거 정말 좋다. 나도 돈만 신경 안쓰이면...(웃음)...그런데 공연으로 돈을 버는 것에 대해서 맞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음악을 전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보통 그런 식으로 생계를 꾸리는데 나는 아직 그 부분은 답을 못 내리겠다. 그래서 공연도 별로 하지 않았다. 친구들은 공연 잡고 활동을 왕성하게 하려고 하는데 나 같은 경우에는 공연하는 것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는 편이다.

주위에서는 클럽같은 데서 오디션도 보고 공연도 해야 하지 않느냐고 하는데 별로 그런 마음이 들지 않는다.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기 보다는, 사람들이 알아주기를 기대하며 노래를 만드는 것은 아니고 그냥 글쎄...잘 늙어야 될 텐데. 라는 생각이 드는데, 나이가 들어서 돈이 없으면 열등감에 휩싸일 것 같고. 노래는 오랫동안 했는데 알아주는 사람은 없고 돈도 못벌고 하는 것도 좀 그런데...내가 어디 갔을 때 ‘어 최고은씨 안녕하세요!’ 이런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래서 어떤 방식으로 하면 음악도 하면서 나만의 공간을 유지할 수 있는지 생각하느라고 어렵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노래를 들려주는 것에 대해 부담감을 가지고 있다. 그것을 즐겨야지 공연도 하고 거리낌 없이 사람들과 소통도 할 텐데, 어디 가서 누가 노래해봐라 하면 되게 싫어한다. 노래방 안간지도 몇 년이 지났다. 남의 노래도 잘 안 듣는 편이다. 뭔가 방법을 몰라서 헤매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무대에 섰을 때 어떤 기분인가.  

항상 완전하지 않다는 느낌이다. 막상 무대에 올라가면 항상 노래가 올바르게 전달되고 있는가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다. 공연이 끝나고 나서도 사람들과 소통이 잘 된것일까를 생각하게 된다. 그런 것 때문에 다시 다음 공연이 부담이 되기도 하고.
 

[날 것의 느낌으로 사람들 앞에 서고 싶다]
 
‘올바르게’란 것이 무슨 의미인가

일 단 일방적이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흐름을 내가 쳐주고 다시 밀려 받고 하는 과정에서 이 노래에 대한 내가 가지고 있던 색깔 같은 것을 이 사람들이 그 느낌으로 받아들여 줄지, 뭔가 허술하게 느껴지지는 않을지. 오롯이 기타와 목소리로만 공연을 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소스가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 없다. 그래서 사람들이 봤을 때 준비되지 않은 공연을 보여주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 두렵다.  

음악을 하고 싶다는 게 공연을 통해서만 이루어지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인지?

그 렇다. 내 노래지만 처음에 만들었을 때의 그 느낌과 몇 년이 지나서도 같은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게 스스로에게 지루한 느낌이 든다. 몇 년 동안 반복해서 부르면 능숙하고 편안한 느낌으로 가겠지만 그런 방식으로 나를 만들고 싶지는 않다. 항상 날 것의 느낌으로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부분이 있다. 욕심이 좀 많다. 사람들은 처음 듣는 노래라고 해도 스스로는 따분함 혹은 습관적인 느낌으로 하는 게 싫다.

공연을 자주 하게 되면 스스로 거품이 많은 사람이 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어느 포인트에서 사람들이 좋아해 주는구나를 알게 되고 멘트도 유창해지겠지만 스스로 있지도 않은 어떤 기운을 만들어갈까봐. 그러고 싶지 않다.

선비같다.  

으 하하하하! 공연을 많이 하면 스스로 자아도취가 많이 될 것 같은데 그런 게 싫다. 또 노래를 부르는 데 있어 싫기도 하고 즐겁기도 하다. 주변에서는 가수가 공연을 해야지라고 하는데 맞는 말인 것 같아서 고민을 하고 있다. EP가 나와서 노출될 경우가 더 생기겠지만 조심스럽게 하고 싶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최고은 쇼케이스 @ 류가헌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는 음악을 한다는 것
]
 
왜 노래를 하는 것 같은가.  

그것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답이 없으니까.  

내가 질문했지만 미안하다. 나도 누가 그거 왜 하냐고 하냐면 할 말이 없다. 그냥 해 본거다.  

노래 잘 한다고 칭찬받으면 좋아서 하고 있을까?(웃음)

무대에 서 있을 때 즐거운 순간이 있지 않은가?

(한참 생각) 아...........................................

없어도 된다.

이런데서 있다고 얘기해야 하는 건가? 으하하하

되게 기분이 좋았던 적은 있다. 아는 분 중에 우울증에 힘들어 하시던 분이 있었는데 내 노래를 듣고 나중에 연락이 와서 이상하게 내 노래를 듣고 난 뒤부터 좋아지고 있다고 하셨다. 노래를 들을 때는 눈물도 났는데 그 뒤로 마음이 편해지며 좋아졌다고. 그런 게 좋다. 그런 부분들이 이게 내가 하고 싶은 음악의 방향성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치료를 해 주자는 건 전혀 아니다.

다만 누군가가 위로가 된다는 말을 할 때 그게 기분이 좋다. 어떤 사진작가 선생님이 목소리에 혼이 있다고 말씀해주셨다. 그랬을 때 그게 재능이라는 것일텐데 스스로도 그걸 흘려보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괜히 나이에 쫓겨서 직장이나 잡자, 이런 생각하면 너무 슬플 것 같다.
 

[소비만 하는 삶은 우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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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두서가 없는데 올 초 우울감이 극에 달했을 때 생각했던 게 있다. 나는 생산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소비만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에서 슬펐다. ‘소비만 해서는 안 되겠다, 움직여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음악을 하다 보면 남에게 노출을 해야 할 때 포장이 되야 된다는 게 힘들다.

사람을 만날 때 이해관계가 없이 만나는 걸 좋아했는데 갈수록 어떤 사람을 만날 때 이해관계가 개입되는 지점들이 생길 때 그게 너무 싫어서 친구를 잡고 울기도 했다.  얘기를 할 때 이 사람에게 어필하기 위해서 하는 게 스스로도 마음에 안 들고 자꾸 그런 식으로 노출되면 그게 습관이 돼서 말하는 방식이 그런 쪽으로 흘러가게 된다. 나도 모르게 체화가 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을 만나는데 같은 패턴으로 얘기하는 게 어렵고 지치는 부분이다. 그렇게 하다보면 어떻게든 공연을 하게 되고 누군가를 만나서 일을 벌이게 되기도 하지만 자꾸 거품만 생기는 것 같다. 내 노래에 집중도 못하면서. 그래서 EP내고 나서 내년에 공부를 하면서 이런 부분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해볼 생각이다. 허우대만 가수 말고 실력 쪽으로 쌓아가고 싶다. 아직 노래에 깊이는 묻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나?

내가 생각해도 이 노래들이 질리는 노래는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나의 깊이를 모두 보여주는 노래는 아니다. 어쩌면 사람들이 편안하게 듣고 좋아하는 지점들이 생길 수는 있는데 예술성이 엄청나게 뛰어나다거나 그런 게 아니라서...그런 부족한 부분들을 채워나가고 싶다. 부족한 부분들이 있어서 공연을 하기 싫은 것 같기도 하고. 아직은 팝의 느낌이 강하다. 사람들은 어떻게 들어줄지 모르겠지만 스스로는 공부를 많이 해야겠다라는 생각을 한다.

 
[시절을 겪어내면서 비로소 숨통이 트였을 때 가사를 쓴다]

그렇게 자기 스스로를 의심하고, 소비로만 채워진 삶에 대해 우울함을 느끼는 감각이 살아있는 사람이 거품이 끼는 것도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 말라고 해도 스스로 의심하면서, 경계하면서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있고, 의심없이 살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가능하다면 후자가 살기에는 심신이 편할 것이다. 자기를 비롯한 세계에 대해서 의심을 갖지 않는 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의심할 수밖에 없는, 그런 불편한 삶을 사는 사람들의 결과물이 더 나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이번에 만든 노래들이 쉽게 나온 것은 아니다. 만들면서 버려진 노래들도 있고 미완성의 노래들도 많다. 대부분은 나의 고민들이 많이 들어있거나, 친구에게 선물하는 노래다. 그래서 뜬구름잡듯이 사랑에 대해서 노래를 불러버리거나 그런 느낌의 것들보다 ‘시절을 겪어내면서 숨통이 트여졌을 때’ 나온 것이다. 반복적인 삶에서 회의를 느끼는 게 아니라 이걸로 내 삶을 채우고 있다는 긍정적인 마인드가 생겼을 때 올라왔던 가사였다.

내게는 꿈이 있는데 짧은 미니스커트를 입어보는 것이다. 치마도 단정한 것만 입고 옷도 깨끗하게만 입지 파티옷을 입어본 적이 없다. 파티옷을 입어보고 싶다. 그걸 안 해 보고서 20대 후반이 된 게 슬프다. 나중에 늙어서 누드를 찍을 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젊었을 때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보면 좋을텐데 그런 걸 못하는 거다. 성격상. 할 수야 있겠지만 하려고 들지는 않고 동경하는.

그런 젊은 시절에 대한 한탄을 담은 게 Rose다. 원래 머리가 항상 길었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머리를 짧게 자른 것이다. 머리까지 길었을 때 사람들이 나를 정형화되게 바라보는 게 있다. 여성스럽고 조신한 이미지. 그런 이미지로 몇 년을 갖혀 있다보니 답답하고, 그런 것 때문에 사람도 그렇게 되는 느낌도 든다. 그래서 나는 그런 생각들이나 고민하고 있는 부분에 있어서 표현을 잘 하지 못하는 것 같다. 스스로는 깊이가 없다라는 생각을 한다. 깊이 있는 노래가 뭔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최고은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게 음악이 됐건 문학이 됐건 다른 영역이 됐건 스 스로는 불만족스러워도 결국 완성을 시키는 것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쓰고 싶고, 쓰고 있기도 하지만 도저히 내 성에 차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결국 맴맴 돌고 있는 거다. 공개하기에는 부끄러워서 못 꺼내겠고 해서 그렇게 악순환이 되는 거다.

뭔가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은 일흔살 여든살이 되도 이 고민이 스스로 완벽한 만족같은 것을 가질 수 있을까 싶다. 항상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가지고 해나가야 하는 것 같다.

연애든, 일이든, 결국 사는 것이든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있느냐 없느냐에서 갈라지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고은씨에게 꼬치꼬치 캐묻는 것이다. 당신의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무엇인가 하고.

사용자 삽입 이미지최고은 EP [36.5'c]

소설이 있다. 어떤 재능이 많은 작가가 있었는데 그 전시에 온 한 기자가 이런 평가를 내린다. 당신의 작품은 너무 좋다. 그런데 당신의 작품에는 깊이가 없다. 이 여자는 그냥 넘겼는데 그걸 옆에서 들었던 한 사람이 그 내용을 보도자료로 쓴 것이다. ‘이 작가는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애석하게도 깊이가 없다.’ 라고.

그 말이 퍼지면서 사람들은 그녀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면서도 ‘그 여자 내가 잘 알지.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녀는 깊이가 없어.’라고 말하기 시작한다. 결국 여자는 강박관념을 갖게 되고 ‘나는 깊이가 없으니까.’ 하면서 나중엔 자살을 했다. 그런데 그 여자가 발견됐을 때 오물 같은 게 널려 있고 작품을 찢어놓은 것들이 발견된다. 그걸 보고 나중에 발표가 나는 것이다. ‘이렇게 뛰어난 재능과 깊이를 가진 작가가 있었다.’ 라고. (깊이에의 강요, 파트리크 쥐스킨트)

문득 드는 생각이 내가 얘기를 하면서 자학을 하는 부분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은 그게 내가 가진 숙제이다. 남들이 알아보지 못할 수도 있고. 그 부분을 계속 기대하는 사람들도 있을 테고. 그래서 격려를 보내주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고. ‘아, 고은이가 치열하게 자기의 어떤 부분과 싸워서 해나가고 있구나.’라고 격려를 해줄 수도 있고 그런 걸 알지 못하고 자체만으로 좋아해주는 사람도 있을 테고. 그 건 숙제로 계속 가져가야 할 것 같다. 사람이 주기가 있지 않나. 행복할 때와 우울할 때. 그런데 그 단계가 조금씩 높아지는 것 같다. 매번 그 상황에서 고민을 해본 사람은 다음에 비슷한 위기가 왔을 때 다른 방식으로 세련되게 우울해질 수 있지 않을까. 그걸 믿으면서 계속 헤쳐 나가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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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장국을 세 번 재탕해먹고 나니 인터뷰 정리가 끝나가고 있다. 나는 내가 한 음식을 먹으면서 남이 해놓은 음식을 먹는 것 같은 희열을 느끼는 재주가 있다. 질리지도 않고 잘도 먹는다는 얘기다.

온통 영어로 된 가사로 노래를 부르는 최고은을 만나러 가는 길은 아주 춥고 멀었다. 하지만 내가 그녀를 기다리면서 뒤에서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을 때 나는 마음이 놓였다. 쑥스러워 뒤돌아보지는 않았지만 기다리는 사람을 향해 뛰어오는 사람은 아마도 좋은 사람이리라. 라고 제멋대로 생각해버린 것이다.

이번 EP에 실린 노래 중 L.O.V.E는 ‘지금’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운명 같은 것에 우리를 맡기지 말고, 바로 지금 우리가 이렇게 서로를 보는 이 순간을 믿자.’ 라고.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의 최고은’을 들어야한다. 마사이를 사랑하고, 아침에 일어나 9곡밥을 챙겨 먹으면서 잘 늙는 것에 대해 생각하고, 깊이에 대한 의문과 의심을 놓지 않는, growing 최고은을. 오래된 나무의 음색을 가진 그녀는 겨울을 지내고 자신만의 봄을 맞이하고 어린 잎을 틔운 뒤 짙어지기를 반복하며 밀도 높은 나이테를 완성시켜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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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30일 류가헌에서 열린 최고은의 쇼케이스에 다녀왔다. 그녀의 공연을 직접 본 것은 처음이었다. 손금 봐주던 사람이 왜 그녀에게 노래를 부르지 말라고 했는지 이해가 갈 것도 같았다. 혼신이 쪼개져 나오는 느낌이 이런 것일까. 부셔져서 사라지지 않기를, 계속 다시 채워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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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첫번째 EP, [36.5'c]에 관한 자세한 정보는 여기